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발전기금 예산을 부실하게 운영했다며 산하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사업 체계를 전면 정비하겠다고 나섰다. 문체부는 15일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영진위가 5년간 24억 원의 예산을 쓴 영화기구 설립이 실패하는 등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지원 대상 선정에도 불공정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영진위는 '한-아세안 영화기구' 설립을 목표로 2019년부터 5년간 예산 69억 원을 편성해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과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기구 설립은 사실상 무산됐다. 그런데도 올해 교류행사 명목으로 예산을 책정하는 등 상대국의 호응이 없는 사업을 5년간 끌고 오면서 24억 원이 넘는 예산을 낭비했다. 역할이 축소된 중국사무소 인력을 뒤늦게 감축한 점도 방만 경영 사례로 지적됐다. 영진위는 한한령과 코로나19로 한국영화 개봉과 유통이 저조해져 중국사무소의 역할이 축소됐음에도 지난해까지 인원을 4명으로 유지했고 올해 2명으로 줄였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독립영화 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에서 신청 자격 요건에 맞지 않는 상영관에 예산을 지원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문체부는 밝혔다. 영진위에 채무가 있는 상영관은 신청 자격이 없는데도 신청을 받아준 뒤 최종 선정해 1억1,400만 원을 지원했다. 문체부는 영진위가 몇 년간 낮은 집행률을 보인 사업에 대한 개선 노력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영화제작지원' 사업은 매년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되지만 최근 3년간 실집행률은 30~40%대에 불과했다. 문체부는 영진위에 코로나19의 후유증,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약진 등 영상콘텐츠산업 환경 변화로 인한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혁신을 주문했다.
정부가 혁신을 명분으로 갑작스럽게 영진위에 칼을 빼들자 영화계 일각에선 정부의 영화계 길들이기가 시작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정부가 지원 정책을 관장하는 영진위를 통해 진보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강한 영화계를 제어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 영화인은 “한국콘텐츠진흥원보다 예산이 적은 영진위 문제점을 공개 질타한 점부터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