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심의에서 노사가 업종별 구분 적용을 두고 강하게 맞붙었다. 2주가량 남은 법정 심의기한 내에 노사가 심의를 마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제4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는 최저임금의 △결정단위 △업종별 구분 적용 여부 △수준 순으로 결정하며, 이날 회의부터 구분 적용 여부를 본격 논의했다. 최저임금 법정 심의 기한은 오는 29일인데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기한을 지킨 경우는 9차례뿐이었다.
노사 양측은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적용을 두고 공방전을 벌였다. 현행법상 최저임금은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으나 도입 첫해를 제외하고 30년 넘게 단일 수준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구분 적용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지난해 심의부터 쟁점화됐다.
경영계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류기정 사용자위원(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은 "최근 통계에 따르면 자영업자 연평균 소득은 2021년 1,952만 원(월 163만 원 수준)으로, 최저임금 근로자 소득(월 182만 원)보다 낮았다"면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지불능력이 떨어지는 업종부터 구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저임금 업종에 대한 낙인효과, 저임금 노동자 빈곤 심화 등을 이유로 구분 적용에 반대했다. 박희은 근로자위원(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경총이 발표한 한·일·유럽연합 업종별 임금수준 국제비교를 보면 이미 한국은 업종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고, 숙박·음식점업에서 특히 낮았다"며 "여기에 최저임금마저 차등적용하면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빈곤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위원은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대기업 중심의 유통구조, 가맹점·대리점의 불공정 심화 등 경제 구조의 문제이며 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와 관련한 정부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온 만큼 관련 통계를 구축해 장기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명로 사용자위원(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구분 적용의 필요성, 문제점을 두고 노사가 각자 입장만 주장하는 데 그친 것은 통계의 한계가 원인이라고 본다"면서 "업종별 통계 시스템을 구축해 이를 실무자료로 채택·논의하는 절차를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사는 향후 표결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앞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김준영 근로자위원(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이 이날 기각되면서 사실상 김 위원은 남은 회의 참석이 불가능해졌다. 최저임금위 운영규칙은 △상해·질병으로 인한 입원 △직계 존·비속의 결혼·사망 시에만 대리표결이 가능하도록 해, 노동계는 수적 열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저임금위는 노동계 요구에 따라 △위원 간 합의 시 위임 표결 △위원 간 합의가 없을 시 운영규칙 개정에 대한 표결 등 의사결정 과정 진행 등을 이날 대안으로 제시했고, 위원들은 15일 제5차 전원회의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