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나쁜 엄마' 후... "빨리 늙고 싶다"는 청춘스타

입력
2023.06.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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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중심서 우뚝 선 '20대 청춘 간판' 이도현 
코르크 마개 입에 물고 발음 연습, 아직도 연기 스터디 
첫 월급 받아 한 일은 가족사진 촬영 
"'더 글로리' 때 연기 자책" 성장통... "빨리 주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JTBC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강호(이도현)는 도통 밥을 먹지 않는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서른다섯이던 사내의 정신은 하루아침에 일곱 살 때로 돌아간 상황. 이런 장면을 찍을 때 이도현(28)은 자신의 일곱 살 때를 떠올렸다. 맞벌이한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집에 혼자 있기 일쑤였다. 그 나이 때 이도현도 한동안 밥을 먹지 않았다.

"5층에 살았는데 어머니가 밥을 해 놓고 나가면 창문 밖으로 그 밥을 다 버렸어요.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혼자 밥 먹는 게 싫고 외로웠나 봐'라고요." 드라마 종방 후 12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도현의 말이다.


'더 글로리'에서 동은(송혜교)과 복수의 '칼춤'을 춘 여정부터 '나쁜 엄마' 강호까지. 이도현은 요즘 K콘텐츠 시장 중심에 선 20대 간판스타다. 해맑은 얼굴과 중저음의 단단한 목소리 그리고 안정적인 연기력이 그의 무기. 이를 밑거름 삼아 이도현은 시대(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오월의 청춘'·2021)와 세대('나쁜 엄마')를 뛰어넘어 다양한 얼굴로 안방극장을 빛냈다.

지금의 화려한 조명은, 당연하지만 꾸준한 노력의 결과다. 이도현은 고2 때부터 코르크 마개를 입에 물고 발음을 훈련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2020)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요즘도 연기를 공부한다. "닷새 전에도 스터디를 했어요. 입시 준비할 때 만난 형 등 네 명이서요. 제게 없는 걸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도전도 할 수 있고요." 데뷔 전 흘린 많은 땀은 생활 연기의 자양분이 됐다. 이도현은 중고등학생 때 신문 배달을 했고 갈비찜 가게 등에서 일하며 재수를 준비했다. 그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처음 한 일은 가족사진 촬영. 그런 그는 1년에 두세 작품에 출연하며 소처럼 일한다. "부모님이 정말 열심히 사셨어요. 제 꿈을 위해 어머니는 정말 많은 일을 하셨고 아버지도 20년 넘게 택시를 몰았고요. 그게 제 일하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날 만난 이도현은 높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 내 자주 웃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발달 장애인 동생과 함께 자랐지만 그는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는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믿으며 산다. "일단 해 보자"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는 이도현은 '더 글로리' 촬영 때 가장 흔들렸다. "'연기를 왜 저렇게 했지?'란 생각에 '더 글로리'가 공개된 뒤 여정에 쏟아지는 환호를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칭찬을 받으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에 감독님을 찾아가 '내가 뭘 잘한 건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털어놓고요."

성장통을 치른 그는 영화 '파묘'에서 무당 역을 맡아 변신에 나선다. '더 글로리'를 함께 찍은 뒤 연인 사이로 발전한 임지연은 그의 든든한 응원군. 이도현은 "서로 '잘할 수 있다'고 위로하며 힘을 얻는다"며 웃었다. 올해 입대 예정인 그는 "또래 친구들과 언제 이렇게 같이 생활할 수 있겠느냐"며 군 생활을 기대했다. 뮤지컬 무대를 꿈꾸며 요즘 노래를 배운다는 청년 배우의 입에선 "빨리 늙고 싶다"는 말까지 나왔다. "배우로서 아쉬운 게 너무 많아요. 빨리 주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서른 넘어 제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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