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군이 저수지 준설 공사를 추진하면서 개인 사유지에 파낸 흙을 무단 투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토지주는 한 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였지만, 군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사후 대책도 세우지 않아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12일 해남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주민 숙원사업 중 하나인 장산저수지 준설 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흙 4,134㎥를 인근 논밭에 쌓아두었다. 한 사업자가 태양광 발전 사업을 위해 매입했지만, 주민 동의 등 문제로 부침을 겪으면서 방치된 사유지다. 군은 '토지 주인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는 일부 주민 이야기를 듣고 이를 추진했다.
문제는 토지 소유주가 바뀌면서 발생했다. 지난 2월 광주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이오헌(65)씨가 귀농을 위해 해당 부지 4,723.9㎡(1,429평)를 낙찰받았고, 3월 이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저수지 밑에서 나온 흙과 자갈, 각종 쓰레기가 뒤섞인 준설토가 2m 이상 쌓여 있어 농사가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흙 색깔도 거무튀튀해 한눈에 봐도 토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씨는 해남군에 원상복구를 요청했고, 지난 3월 해남군은 “토지 주인이 입회한 가운데 자갈을 골라내고 평탄화 작업을 시행해 논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복구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파종 시기가 끝나가면서 애가 탄 이씨는 5월 다시 낙찰받은 토지를 방문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해당 터엔 되레 준설토가 6m 이상 쌓여 있었다. 마치 성곽을 쌓아 올린 듯 아예 인근 부지에 있던 준설토를 모두 끌고 와 이씨의 논밭에 쌓아 올렸다.
826㎡가량은 경사진 흙더미로 인해 농사가 아예 불가능했고, 각종 자갈과 돌무더기 역시 여전했다. 이씨는 “농사가 가능하도록 평탄화 작업을 해달라고 요청했더니 보복이라도 하듯 아예 흙더미를 쌓아 올려 토지를 쓸 수 없게 만들었다”며 “행정기관이 개인 사유지에 준설토를 무단 투기하면서 토지주의 입회는커녕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올해 귀농을 준비해 왔던 이씨는 결국 한 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해남군은 “평탄화 작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해명이다. 군 관계자는 “논농사를 짓기 위해선 원래 물을 가두기 위해 어느 정도 흙을 쌓아야 한다”며 “논농사가 가능하게 해 달라는 민원인의 요청에 따라 불가피하게 흙을 쌓아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애초 민원인에게도 흙을 다 거둬 줄 수는 없으니 농경지로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며 “한 차례 자갈을 걸러내고 평탄화 작업을 시행했다”고 덧붙였다.
토지 주인의 입회나 허가 없이 작업이 이뤄졌다는 지적에 대해선 “시공사와 의사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민원인과 추가로 협의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답했다.
군은 준설토를 쌓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예산이 없어 원상복구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이미 장산저수지 준설 공사를 완료하면서 관련 예산을 모두 소진했다”며 “쌓인 흙을 다시 걷어내는 데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서 별도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이상 원상복구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주민은 "인구 소멸지역인 해남군이 지역을 찾아 귀농한다는 주민에게 오히려 힘(행정력)을 과시하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토지 소유자에게 사과하고, 귀농인이 정착할 수 있도록 원상 복귀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