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회계 개혁으로 추진했던 외부감사법 개정안(신외감법)이 시행 5년 만에 뒷걸음질 치게 됐다. 감사 부담이 과도하다는 기업의 반발을 윤석열 정부가 대폭 수용하면서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실시될 예정이었던 2조 원 미만 상장사의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연결 내부회계)의 외부감사가 유예됐다.
금융위원회는 11일 자산 5,000억 원 이상 2조 원 이하 상장사의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 도입 시기를 당초 내년에서 2029년으로 유예하는 주요 회계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자산 1,000억~5,000억 원 상장사에 대한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도 2025년에서 2030년으로 미뤄졌다. 연결 내부회계는 자회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의 회계 내부통제시스템이다.
신외감법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회계개혁으로 시행됐다. 그해 불거졌던 5조 원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회계 투명화와 이를 통한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커지면서다. 이에 당시 신외감법에는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 도입을 비롯해 정부가 회계부정 위험성이 큰 기업의 감사인을 직권지정할 수 있는 사유(직권지정사유) 확대, 6년간 외부감사인을 자유지정한 기업에 대해 당국이 3년간 감사인을 지정(주기적 지정제)하는 제도 등이 포함됐다.
기업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감사보수비가 크게 늘면서 기업 운영에 부담이 커졌다는 이유였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의 평균 감사보수비용은 2억7,561만 원으로 신외감법이 시행된 2017년(1억2,132만 원) 대비 127.2% 늘었다. 금융위도 이런 고충을 받아들여 당초 작년 시행 예정이던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를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1년 연기한 바 있다.
이번 결정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기업 회계 투명성 강화 취지는 빛을 잃게 됐다. 현행 27개였던 직권지정사유는 11개로 축소된다. 실제 금융위는 '재무기준 미달'과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사유를 폐지하고, 단순 경미한 절차위반은 과태료로 전환했다. 주기적 지정제는 정책효과를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쌓인 후에 개선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사인 지정제는 필요하지만 그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당국은 감독지침, 시행세칙 등 법령 개정이 필요 없는 사항부터 상반기 중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입법이 필요한 시행령 및 법률 개정 등은 올해 내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