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총선 전 내부 쇄신을 주도할 혁신위원회에 전권을 위임하고 위원장직에 외부 인사를 임명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재명 대표가 고강도 쇄신을 주문해 온 비이재명(비명)계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셈이다. 다만 친이재명계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인선과 혁신 대상은 향후 계파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4일 본보 통화에서 "혁신위에서 결정된 사안을 당에서 기본적으로 전부 수용하는 방식으로 전권을 위임하기로 했다"며 "위원장도 외부에서 영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도부는 이달 중순쯤 혁신위 출범을 위해 위원장 후보군을 추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14일 쇄신 의원총회에서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투자 의혹에 따른 도덕성 문제 해소를 위해 혁신기구 설치를 의결한 바 있다.
비명계 의원들은 그간 이 대표에게 '혁신위 전권 위임 및 외부 인선'을 요구해 왔다. 윤건영 의원은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에 "혁신위에 당 지도부의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해야 한다"며 위원장 인선과 관련해서도 "엄정한 외부 시각만이 민주당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명계 양이원영 의원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혁신위는 임명, 당 지도부는 선출. 임명 권력이 선출 권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며 전권 위임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계파 간 신경전이 이어져 왔다.
사실상 이 대표가 비명계 요구를 수용한 모양새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혁신위가 수술대에 올릴 혁신 대상은 물론 혁신위 인적 구성을 두고 불거질 수 있다. 혁신위가 친명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개딸 등을 비롯한 강성 팬덤을 문제 삼는다면, 친명계 중심인 지도부에 대한 견제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친명계 초선 의원은 "혁신위는 당의 도덕성 회복을 위한 개혁안을 내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며 "지도부를 대체하는 것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명계 중진 의원은 "혁신위가 '짤짤이'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의원에 대한 징계 등 당이 온정주의에 빠져 안 하거나 미뤄 온 문제들도 끄집어내야 한다"며 "대선, 지방선거 패인은 물론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한 분석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명계에선 지도부가 별다른 의견 수렴 없이 혁신위 구성에 나서는 것에 대한 불만도 감지된다.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지도부와 독립된 혁신위가 출범해야 하는데, 지도부가 밀실에서 다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비명계 중진 의원은 "지난번 우상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처럼 의원들이 선수별로 인사를 추천하는 등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