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출 후 은퇴 위기까지 몰린 베테랑이 새 팀에 둥지를 튼 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올 시즌엔 ‘거인의 진격’에 핵심 역할을 하는 베테랑 불펜 투수 김상수(35ㆍ롯데)가 주인공이다.
16일 현재 김상수는 19경기에서 3승 5홀드 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하며 롯데 마운드에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수치도 좋지만, 내용 면에서도 좋은 흐름은 이어가고 나쁜 흐름은 끊는 알짜배기 활약이기에 더욱 값지다.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롯데는 1-0으로 앞선 8회말 무사 2루에 필승조 구승민을 냈지만, 구승민의 3구째 공이 ‘헤드샷’이 되면서 퇴장당했다. 이때 김상수가 급하게 마운드에 올라 후속 타자들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급한 불을 껐다.
김상수는 17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본보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쉬고 있다가 갑자기 나갔지만, 불펜 투수로서 언젠가 마운드에 올라 던질 수 있도록 마음과 생각이 준비돼 있다.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래리 서튼 감독도 “(김상수가) 등판할 때마다 상대 타선의 흐름을 끊고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팀 내에서 그의 비중을 높게 평가했다.
새로 팀에 합류한 베테랑의 활약에 롯데 팬들도 ‘올 시즌 최고의 영입 선수’ ‘그저 빛상수’ 등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엔 김상수 등판 때 ‘기세’라는 응원 문구가 부쩍 늘었다. 김상수는 최근 구단 방송 채널에서 ‘마운드에서 긴장감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는 후배의 질문에 “기세!”라고 힘줘 답했는데, 이 발언이 팬들에게 회자된 것이다. 심지어 ‘기세’를 활용한 김상수 전용 ‘응원 상품’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팬들도 있다. 김상수는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운도 중요하지만 나 스스로도 ‘기세를 가진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스프링 캠프 때부터 ‘기세’를 자주 말했는데, 나도 모르게 방송에서 입 밖으로 표현된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최근엔 팬들의 ‘기세 응원’ 덕분에 내가 더 기세를 얻는 것 같다”라며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난겨울 누구보다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키움 소속이던 2019년 역대 단일시즌 최다 홀드 기록(40개)을 세우며 홀드왕에 올랐지만, 이듬해엔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 2021년 SSG로 이적했지만, 반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지난해엔 단 8경기 등판에 그쳤다. 결국 시즌 직후 FA 연장 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SSG에 방출을 요청했다.
당시 심각하게 은퇴를 고민했다고 한다. 김상수도 “결과가 안 나오다보니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는 생각만 들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역시 주변인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김상수는 “오주원 선배와 (이)택근이 형, 그리고 (박)병호 형 등 ‘딱 1년만 더 도전해 봐’라고 하셨다. 책도 많이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렸고, 특히 ‘멘털 스승’인 아내가 큰 힘이 됐다”면서 “‘진짜 1년만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을 즈음 마침 롯데에서 손을 내밀어 주셨다”라며 다시 일어서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 시즌은 전성기였던 2017~19시즌을 뛰어넘어 데뷔(2006년 2라운드 전체 15순위) 이후 ‘개인 통산 최고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상수는 그러나 “아직 시즌 초반인 만큼 ‘최고의 해’라기엔 너무 이르다”라며 몸을 낮췄다.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온 만큼 “지금은 그저 마운드에 서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소속팀의 세 번째 우승’을 얘기했다. 그는 “신인이었던 2006년(당시 삼성)과 2022년(당시 SSG)에 소속 팀은 우승했지만, 정작 나는 멀리서 박수만 쳤다. 많은 축하 전화에도 불구하고 사실 마음은 편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올해는 소속팀 롯데의 우승에 꼭 힘을 보태고 싶다”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