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중앙공원 내 팔각정 부근에 다다르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만든 급식소들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이 이곳에 사는 토끼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급식소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운동기구 시설 주변에 10여 개 설치됐다. 급식소 안에는 사료가 일부 채워져 있기도 했지만, 토끼의 주식인 건초나 생초, 물이 있는 곳은 없었다.
급식소 주변에 토끼들이 모여들었다. 토끼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운동기구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두 마리 토끼는 한 시민이 바벨을 내려놓는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년 전부터 공원에서 토끼를 봐온 박모(31)씨는 "시민들이 토끼에게 먹을 것을 건네는 등 대부분 우호적"이라며 "그래서인지 토끼들이 사람을 보고 피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 동행한 토끼보호단체 토끼보호연대의 최승희 팀장이 사료를 건네자 토끼들이 다가와 손에 있는 사료를 받아먹었다. 가까이에서 본 토끼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일부 토끼는 눈이 찢어지거나 귀가 물린 흔적 등이 있었다. 최 팀장은 "영역다툼으로 토끼들이 상처를 입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토끼가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오늘 만난 개체들은 대부분 1~2세로 추정된다"며 "토끼들이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반면 중성화 수술이 돼 있지 않아 새끼들이 계속 태어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11일 성남시와 토끼보호연대 등에 따르면 토끼들이 분당중앙공원에 산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이곳에 서식하는 토끼들은 유럽 남부에서 살던 굴토끼를 반려용으로 개량한 품종으로 시민들이 기르다 버렸거나 버려진 토끼 사이에서 태어난 개체들이다. 최근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주민들과 분당중앙공원 토끼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간 토끼 관리 방식을 놓고 의견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토끼보호단체는 토끼들이 사람이 주는 음식에 길들여져 야생성을 잃은 상태이며, 그대로 방치하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토끼들은 영역다툼으로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노출돼 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성화 수술이 이뤄지지 않아 토끼가 계속 태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성남시는 이번 갈등을 계기로 토끼들의 중성화에 나설 예정이다. 다만 중성화 수술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 중성화 이후 관리 방안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성남시 푸른도시사업소 공원과 관계자는 "현재 공원 내 확인된 개체만 20여 마리"라며 "조만간 중성화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성화 수술을 위한 재원 조달 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중성화 이후 관리 방안 역시 입양, 소동물원 이송, 방사 등을 놓고 동물보호팀과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승희 토끼보호연대 팀장은 "먼저 정확히 개체 수를 파악하고, 단시간 내 전수포획을 해 중성화함으로써 개체 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중성화 이후 토끼 관리 방식에 대해서도 지자체와 주민, 보호단체들이 함께 신중하게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