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의 '온건파'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동시대의 '급진파' 흑인 지도자 맬컴 엑스(X)에 대해 가한 것으로 알려진 비판은 언론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인터뷰 발언을 왜곡해 편집하고, 심지어 원문에 없는 표현까지 추가했다는 것이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킹 목사의 새로운 전기 '왕: 하나의 삶'(King: A Life)을 집필 중인 작가 조너선 에이그는 최근 미 듀크대 기록보관소에서 1965년 1월 킹 목사가 플레이보이 매거진 인터뷰 때 했던 발언 전문을 확인했다. 에이그는 "(해당 인터뷰 기사로) 수십 년간 킹 목사가 맬컴 X를 '격렬하고 선동적인 웅변가'라고 가혹하게 비판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당시 46세였던 흑인 기자 알렉스 헤일리는 킹 목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한 뒤 기사를 작성했다.
80쪽 분량의 인터뷰 녹취록 원문에서 문제의 언급은 60쪽 부분에 있다. 당시 킹 목사는 맬컴 X 관련 질문을 받자 "그의 정치적·철학적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가 나와 다른 답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폭력에 대해 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헤일리의 기사는 딴판이다. 킹 목사가 "맬컴 X는 본인과 우리 국민들한테 큰 해를 끼쳤다고 생각한다. 흑인들에게 스스로 무장하고 폭력에 가담할 준비를 하라고 촉구하는 '격렬하고 선동적인 웅변'은 슬픔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고 밝힌 것으로 대체돼 있다.
에이그는 "'격렬하고 선동적인 웅변'은 인터뷰의 다른 부분에서 나올 뿐, 맬컴 X에 대해 한 말이 아니다"라며 "다른 발언들은 녹취록 어디에도 없다"고 WP에 설명했다. 헤일리의 기사에 대해선 "긴 답변을 줄이거나 약간의 (표현) 수정을 한 게 아니라 저널리즘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킹 목사는 맬컴 X에 대해 훨씬 더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급진적이었다"며 "두 사람은 확실히 같은 목표를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헤일리가 1992년 70세로 사망한 탓에 정확한 해명을 듣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1976년 집필한 책 '뿌리: 미국 가족의 모험담'과 관련해서도 역사적 사실의 부정확한 언급, 표절 의혹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맬컴 X는 헤일리의 킹 목사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 지 한 달 만인 1962년 2월, 킹 목사는 1968년 4월 각각 암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