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동안 위기 청소년 도운 힘은 제 가족이 줬죠"

입력
2023.05.11 17:30
24면
LG의인상 받는 이정아 물푸레나무 대표
무료급식소·상담버스 운영…"가정처럼 쉴 수 있는 공동체 만들어"
화재 현장서 시민 구한 고 성공일 소방교·조연제 경위도 수상


"청소년들이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가는 모습만 봐도 뿌듯합니다."


이정아(55)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 대표는 11일 LG의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다양한 사연으로 집을 나와 배회하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쉴 곳을 내어주는 등 24년 동안 지역 청소년을 돌본 공로를 인정받았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이 대표는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에게 가정처럼 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며 담담해했다.

이 대표는 대학생이던 1988년 야학을 하면서 선행을 시작했다. 과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판자촌에 살며 도시락을 제대로 싸지 못한 기억이 있어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는 "가정 문제 등으로 가출한 청소년에겐 보호시설보다 잘 성장할 수 있는 가정 같은 공동체가 필요하다"며 "그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야학 교사와 공부방, 주말학교 운영 등을 해오다 2004년 지역 기반의 청소년 공동체 '물푸레나무'를 발족하며 전문적으로 위기 청소년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다. 이어 2011년부터 가출 청소년들이 많이 몰린 경기 부천시 부천역 주변에 청소년 무료급식 차량을 매주 2회 운영했다. 이 대표는 2016년 무료급식소 '청개구리 식당'을 열었다. 현재까지 6,000명이 넘는 청소년이 이용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부터 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고민을 듣는 상담버스 '청개구리 충전소'를 운영 중이다.

이 대표의 이런 활동 덕에 공동체에서 의젓한 성인으로 성장한 이들이 나오고 있다. 가정 폭력으로 인해 가출한 두 남매는 각각 간호사와 경찰이 됐고 청개구리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한 소녀는 사이버대학에 다니며 청개구리 식당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한 협동조합 창립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가 지금까지 봉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다. 야학에서 만난 남편과 네 자녀가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는 "남편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께서 많은 힘을 주셔서 아이들도 잘 자랄 수 있었다"며 "가족들 누구 하나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손이 부족할 때 먼저 나서 도와줘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공익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유기동물 보호, 제로웨이스트 활동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로 구성하며 관련 상품을 고안하고 있다. 반려동물 관리사인 조합원이 만든 수제 반려비누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회성 기부금으론 한계가 있으니 공익 활동을 진행하며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위기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공동체를 꾸준히 운영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LG복지재단은 이날 이 대표 외에 화재 현장에서 시민을 구한 고 성공일 소방교(30·전 김제소방서)와 조연제 경위(54·사남파출소)에게도 LG의인상을 수여했다. LG 관계자는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 헌신과 봉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는 의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전했다.




박관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