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민사소송' 패소한 트럼프...2024 대선 가도 제동 걸릴까

입력
2023.05.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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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996년 강간 의혹 소송 패소
500만 달러 배상...트럼프 "마녀사냥" 반발
"사법 리스크에도 지지율 유지" 전망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강간 의혹 관련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폭력 혐의가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성추문 형사 기소’에 이어 27년 전 성폭력 건까지 법정에서 일부 인정되면서 2024년 대선 가도에 사법 리스크가 또 추가됐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며 반발했고, 항소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트럼프 성폭력' 민사 소송 일부 패소

미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뉴욕 남부연방지법 배심원단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강간을 당했다며 소를 제기한 유명 패션 칼럼니스트 출신 E. 진 캐럴(79)에 대해 '강간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성추행은 있었다’고 판단했다.

캐럴은 1996년쯤 뉴욕 맨해튼의 고급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에서 우연히 마주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강간을 당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 친구의 선물을 고르는 일을 도와달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 부탁에 응했다가 여성용 속옷 매장 탈의실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주장이었다.

뉴욕 시민 남성 6명, 여성 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캐럴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간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을 성추행하고 폭행했다는 캐럴의 주장은 사실에 부합한다고 봤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간 주장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사기’와 ‘거짓말’ 등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캐럴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총 500만 달러(약 66억 원)의 피해보상과 징벌적 배상을 명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나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이번 평결은 역사상 최악의 마녀사냥이자 (미국의) 불명예”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측 변호인 역시 이번 평결이 잘못됐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사법리스크 대선 영향 전망 엇갈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덮친 사법 리스크는 이미 여럿이다. 그는 성추문 의혹 입막음을 위해 2016년 성인배우에게 돈을 지급하는 등 34건의 중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3월 형사 기소된 바 있다. 미국 역사상 전ㆍ현직 대통령의 첫 형사 기소 불명예로 기록되기도 했다.

또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으로 백악관 기밀문서를 유출한 사건, 1ㆍ6 워싱턴 국회의사당 지지자 난입 폭동 사태, 조지아주 선거 부정 의혹 제기 건 등으로도 조사와 법적 공방에 휘말려 있다. 사법 이슈가 세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그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물론 ‘트럼프의 역반응 법칙’도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불리해 보이는 뉴스가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시킨다는 얘기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 공화당 내 경선에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의 공화당 경선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60%의 지지율을 획득해 19%에 그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압도했다.

7일 공개된 미 워싱턴포스트ㆍABC방송 여론조사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맞대결에서 최고 7%포인트를 앞선다는 결과도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 도덕성 기준에 대한 지지층의 기대 수준이 높지 않고, 엄격한 형사재판을 통해 범죄 혐의가 인정된 것도 아니어서 이번 민사 소송 평결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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