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건물 공사 소음에 앵무새 300마리 떼죽음...대법 "건설사가 손해배상해야"

입력
2023.05.05 12:00
"공사 소음으로 앵무새 300마리 죽어"
1, 2심 "생활소음 규제 기준 안 넘어" 기각
대법 "가축 피해 기준 종합적 고려해야" 파기환송

반복적인 공사 소음과 진동으로 가축이 집단 폐사했다면 생활소음 규제 기준을 지켰더라도 건설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앵무새 판매장을 운영하는 A씨가 건설사 두 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2년부터 경기 안양시의 한 건물에서 앵무새를 사육하며 판매해 왔고, 이 건물 바로 옆에선 2017년 1월부터 6개월여간 지상 15층 규모의 주거용 오피스텔 신축 공사가 진행됐다. A씨는 해당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등으로 앵무새들이 이상증세를 보이다가 죽고 있다며 안양시청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공사가 끝난 뒤 A씨가 관할 유역 환경청장에 신고한 바에 따르면, 폐사한 국제 멸종 위기종 앵무새만 304마리였다.

A씨는 앵무새들의 죽음으로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공사를 진행한 두 건설사에 3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 2심은 공사 당시 민원으로 14차례 소음을 측정한 결과 생활 소음 규제 기준인 70dB(데시벨)을 넘은 적이 없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일부 앵무새의 털빠짐 증상이나 폐사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앵무새들이 공사현장의 소음, 진동으로 발생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상증세를 일으키거나 폐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가 건설사들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이 사건에선 생활소음 규제 기준뿐만 아니라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정한 가축피해 인정 기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가축피해 인정 기준에 의하면 가축의 성장지연, 수태율 저하, 생산성 저하 등의 피해와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소음은 평균 60데시벨"이라며 "이 사건 공사로 발생한 소음은 가축피해 인정기준에 도달했거나 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공사가 시작된 후 A씨 판매장의 월별 매출액, 앵무새 연간 매입액이 전체적으로 감소했다는 점도 인정됐다.

대법원은 "생활소음 규제 기준은 주민 건강 등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기준으로, 이를 넘어야만 '참을 한도를 넘는' 위법한 침해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실적인 피해의 정도가 현저하게 커서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 경우에는 이를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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