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원 규모 ‘상생 기금’ 조성 등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갑질’ 자진 시정 방안을 경쟁당국이 수용할 조짐을 보이자 피해 기업인 삼성전자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피해 보상안이 빠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음 달 7일 전원회의를 열고 공정위 심사관과 브로드컴이 협의해 마련한 동의의결 방안 인용 여부를 심의ㆍ결정할 예정이다. 동의의결은 공정위 조사ㆍ심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이나 소비자 피해 구제 등 시정 방안을 제시하면 위법 여부를 따져 과징금 등으로 제재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히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부품을 판매하며 3년간 장기 계약을 강요한 혐의를 심사하던 중 지난해 8월 브로드컴 신청을 받아들여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했다. 이후 △스마트기기 제조사 대상 부품 공급 계약 관련 강제 금지 △반도체 분야 중소 사업자 지원을 위한 200억 원 규모 상생 기금 조성 △삼성전자가 구매한 부품에 대한 기술 지원 및 품질 보증 약속 등이 내용인 잠정 동의의결안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잠정안으로는 실질적 피해 구제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삼성전자 등 업계의 인식이다. 업계는 피해 규모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가 동의의결안에 삼성전자 등에 대한 피해 보상 방안을 포함하거나, 동의의결 대신 정식 심의를 통해 브로드컴의 위법 여부를 최종 확정해 달라는 취지의 공식 의견서를 최근 공정위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동의의결 절차가 원점 재검토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게 공정위 주변 예상이다. 200억 원짜리 ‘면죄부’라는 불만이 업계에서 나오지만, 200억 원이면 공정위가 브로드컴에 부과할 수 있는 최대 과징금보다 많은 액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 보상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업계가 동의의결을 근거로 규모가 1조 원대에 이르렀던 퀄컴 소송에 버금가는 대형 국제 소송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