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방한한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에 얼마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내놓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정상회담에서 우리 기업이 대신 갚는 '제3자 변제'로 양보한 만큼 이제 일본이 나설 차례다.
하지만 응당 일본의 답을 받아내야 할 정부 기류가 오히려 조심스럽다. 반대로 일본은 버티며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이다. 양측이 회담 성공과 한일관계 발전에는 의기투합하면서도 가장 껄끄러운 현안을 놓고 막판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기시다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직접 언급하는 경우다.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원하는 바다. 다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정부는 가급적 일본과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는 듯 '로우키(low-key)'로 접근하고 있다.
일단 강제동원은 회담 의제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4일 "양국 정상은 안보와 첨단산업 및 과학기술, 청년 및 문화협력 등 주요 관심사에 대해 협의한다"고 밝히는 데 그쳤다.
우리 외교당국은 회담을 준비하면서 "정부의 해법이 지속가능하려면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일본 측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 대통령이 먼저 '정치적 결단'을 내린 상황에서 재차 보채기보다는 점잖게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일관계 전문가는 "대통령실에서는 정부가 일본에 사과해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외교이익을 상실할 수 있다"며 "정상 셔틀외교를 통해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며 장기적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호응'의 수준을 놓고 일본 내 의견은 분분하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일본 정부 관계자 일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국이 제시한 강제동원 해법을 뒷받침하고 19~21일 히로시마 주요7개국(G7) 정상회담의 성공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집권 자민당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자민당 외교부회는 기시다 총리의 방한 보도가 나오자 '(한국에) 추가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로 회의를 진행했다고 공개했다. 대정부 압박인 셈이다.
대신 일본은 기시다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하고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는 선에서 성의를 보일 전망이다. 이 선언은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고 있다. 두루뭉술하게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에 그친 3월 회담보다는 일부 진전된 표현이다. 이 외에 일본은 한국에 줄 선물로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지지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3자 변제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한국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일본의 호응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일 양국 수준에서는 말끔한 매듭이 어려운 만큼 미국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직 고위외교관은 "미국의 설득이 있다면 일본의 보다 진전된 호응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2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을 만나 "한반도와 아시아 지역 전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