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참수, 사망"… 여섯 부인의 운명은 기구했지만 무대의 흥은 폭발했다

입력
2023.04.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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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의 여섯 왕비 그린 '식스 더 뮤지컬' 리뷰

뮤지컬의 전형적 작법에서 벗어난 형식과 지루할 새 없이 관객을 수백 년 전 역사 속으로 이끄는 최신 대중음악 장르의 향연, 배우들의 폭발적 에너지와 신선함까지. 지난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개막한 '식스 더 뮤지컬'(이하 '식스')은 여러모로 8년 넘게 흥행 중인 브로드웨이 최고 히트 뮤지컬 '해밀턴'을 떠올리게 한다. '해밀턴'이 미국 건국 주역인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랩과 힙합으로 재조명했다면 '식스'는 영국 튜더왕조의 헨리 8세와 여섯 왕비의 이야기를 가창력 뛰어난 팝 디바의 음악으로 그려냈다.

공연은 강렬한 비트와 여섯 왕비의 운명을 상징하는 노랫말인 "이혼, 참수, 사망, 이혼, 참수, 생존"으로 시작하는 팝 음악으로 막을 연다. 헨리 8세는 종교 개혁이란 업적을 남겼지만 왕비를 갈아치우며 6번 결혼해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는 문제적 인물. '식스'는 헨리 8세의 히스토리(history)에 가려져 있던 여섯 부인 아라곤(손승연·이아름솔), 불린(김지우·배수정), 시모어(박가람‧박혜나), 클레페(김지선‧최현선), 하워드(김려원·솔지), 파(유주혜·홍지희)의 허스토리(herstory)에 주목했다.

뮤지컬이 80분이라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 이들의 기구한 사연을 모두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보컬을 맡은 여섯 부인과 네 명의 여성 연주자가 쉼 없이 연주와 노래를 몰아치는 팝 콘서트 형식이기 때문이다. 비욘세, 샤키라, 에이브릴 라빈, 아델, 시아 등 세계적 팝 스타들을 모티프로 캐릭터화한 여섯 부인은 '불행 배틀'을 펼친다. 각자 인생을 압축한 노래를 부르고 이를 바탕으로 헨리 8세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을 리드 보컬로 정하는 게 경쟁의 규칙. 헨리 8세의 외도로 일방적 이혼을 당한 첫 번째 왕비 캐서린 아라곤, 불륜 상대였다가 두 번째 부인이 된 앤 불린, 헨리 8세의 임종을 지킨 마지막 왕비 캐서린 파 등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탁월한 가창력으로 각자의 사연을 풀어낸다.

'식스'는 학생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20대 동갑내기 루시 모스(연출)와 토비 말로(작곡)가 2017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재학 중 만들어 그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2019년 런던 웨스트엔드, 2020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지난해 토니상 작곡상과 의상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3주간의 영국 배우들의 아시아 첫 내한 공연에 이어 세계 최초 라이선스 공연이 진행 중이다.

뮤지컬 장르의 외연 확장을 꾀한 원작의 힘과 더불어 한국 배우들의 수준급 연기와 가창력에 객석은 들썩였다. 헨리 8세의 결혼 스캔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사전 정보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성 관객에게는 여성 서사의 통쾌함을, 남성 관객에게는 시원스럽게 뻗어 나가는 여성 보컬의 쾌감을 선사해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객석 만족도가 높다 . 공연은 6월 25일까지.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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