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의 조언 "민간 기술 혁신 이끄는 건 정부 선행 투자"

입력
2023.04.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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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벨상 마이클 크레이머 교수
ADB 총회 참석 전 국내 기관과 인터뷰
"저출산에 이민·외국인 도우미 활용을"

“사회에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불투명한 혁신 기술 개발에 민간이 나서도록 유도하는 방법이요? 정부가 기술을 사 줄 테니 안심하라고 미리 약속하는 것입니다.”

마이클 크레이머(59) 미국 시카고대 교수(경제학)는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 투자를 효과적으로 촉진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 해법으로 정부의 ‘선구매 약속(Advanced Market CommitmentsㆍAMC)’을 지목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산업연구원(KIET),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4곳이 25일 함께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다. AMC는 상업적 인센티브가 약한 기술의 개발을 촉진할 목적으로 민간 투자 주체에 사전 제공하는 정부 차원의 구매 약속이다.

크레이머 교수는 빈곤 퇴치 방법론을 제시해 아브하지트 바네르지, 에스테르 뒤플로와 함께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석학으로, 내달 초 인천 송도에서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곧 방한한다. 4개 연구기관은 총회 기간 열리는 ‘한국 세미나의 날’에서 △복합 위기 극복 △공급망 재편 △디지털 전환 △재정 개혁이 주제인 세부 세션을 하나씩 맡아 진행할 예정이다.

크레이머 교수에 따르면, AMC의 효용은 다양하다. 일단 코로나19 대유행 뒤 더 벌어질 게 분명한 선진국과의 소득이나 디지털 격차를 개발도상국이 좁히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 필요한 기술 개발 자금을 지원하거나 기술 개발 후 구매를 약속하면 유인이 약해 망설이는 민간의 신기술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이나 기후 기술처럼 공동체에 긴요하지만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기술이 세상에 나오도록 하는 데도 AMC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크레이머 교수는 “폐렴구균 탓에 사망하는 저소득국 아동이 속출하던 2009년 당시 AMC를 통해 12억 달러 규모의 재원이 마련됐고, 단시간에 두 가지 폐렴구균 백신이 개발돼 결과적으로 7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본격화하고 있는 공급망 분절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도 AMC가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는 게 크레이머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비용을 좀 아끼겠다고 선행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안전벨트 없는 차를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라며 “지구상 모든 사람에게 신속히 백신을 제공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각국 정부가 백신에 대한 무역 장벽을 세울 필요성이 줄어들 게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챗GPT 등 AI로 단기간 생산성 향상은 난망”

인터뷰에서 크레이머 교수는 한국이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그가 제안한 것은 이민 정책을 통한 경제활동 인구 확충이다. 그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대상 특별비자 프로그램’이 참고할 만하다”며 “이를 통해 이민에 따르는 사회적 우려를 최소화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와 세수 증가 등 경제적 이득도 거둘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챗GPT 등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관련해서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큰 잠재력을 AI가 갖고 있지만 단기간 내 생산성 향상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더불어 기업들의 전반적 전략 수정과 향후 발생할 실업자 재취업 지원 등 정부의 대응이 필요하리라고 그는 예상했다.

세종=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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