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전통의 진화'를 목표로 활동하면서 가장 진화된 지점에 와 있는 게 이번 ‘일무’입니다. 앞으로는 전통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컨템포러리한 작업까지 향해 가면서 전통이 가장 현대적인 공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목표입니다."
5월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패션디자이너이자 2010년대 이후 한국무용계에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는 공연 연출가로 자리매김한 정구호 연출가의 창의성과 감각이 집약된 작품이다. 국립무용단의 '단'과 '묵향'(2013), '향연'(2015), '춘상'(2017), ‘산조’(2021) 등으로 한국무용계에 새 바람을 일으켜 온 정 연출가는 지난해 서울시무용단과 협업해 '일무'를 처음 선보였다. 종묘제례에서 열을 맞춰 추던 '일무'와 궁중무용 '춘앵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올해는 작품구성과 의상에 변화를 줬다.
25일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연습실에서 진행된 시연에서 주황색 의상을 입은 남성 무용수 18명은 역대 임금의 무공을 칭송하며 정대업 음악에 맞춰 추는 무관의 춤 '정대업지무'를 절도 있는 군무로 선보였다. 채도 높은 초록색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 24명의 춘앵무 동작은 현대적이었다. 춘앵무의 원형은 일인무지만 무용수들이 일제히 오른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몸을 비트는 등 역동적 대형 군무로 확장됐다.
지난해 5월 초연은 3막이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4막으로 구성을 바꿨다. 일무를 재해석한 1막과 춘앵무와 '가인전목단'을 재해석한 2막, 일무의 미학을 새롭게 창작한 3막 '신일무' 구성이었던 데서 가인전목단을 빼고 2막과 3막 사이에 창작 무용 '죽무'를 추가해 넣었다. 죽무는 무대 위에 대나무를 상징하는 파이프를 30~40개 세우고 남성 무용수들이 파이프 사이를 움직이면서 7m 길이의 장대를 들고 추는 춤이다. 정 연출가는 "전통을 보여주는 전반부와 현대무용 성격의 4막 사이에 긴장감 있는 '쉼'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연출 취지를 설명했다.
의상에도 변화를 줘 '정대업지무'의 암적색 의상이 주황색으로 달라졌다. 정 연출가는 "전통에 가까웠던 초연과 달리 좀 더 현대적이고 상징적인 색을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이 산하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 변신을 선언하면서 초연한 '일무'는 3,022석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4회 공연 객석점유율이 75%를 넘어섰다. 무용수 55명의 일사불란한 대형 군무 등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과 현대무용가 김성훈, 김재덕이 함께 작업한 현대적 안무와 김재덕 안무가가 맡은 경쾌한 음악이 독특한 조화를 이뤘다. 정 연출가는 "새로운 전통의 이미지를 보여줘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며 "단순해 보이는 작품이고 지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무용단이 엄청난 연습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새로운 이미지로 바꿔 놓은 공이 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