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돈봉투' 사건 불똥 옮겨붙나... 민주 강성당원들 "대의원제 폐지" 주장

입력
2023.04.25 04:30
권리당원보다 50~60배 영향력에
청원게시판 등서 폐지 요구 분출
김민석 등 지도부도 검토 나서
"당의 역사와 근간 훼손" 반론도

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위기에 몰린 가운데 강성당원들을 중심으로 의혹의 온상이 된 대의원제 폐지 요구가 비등하고 있다. 당직 선거에서 권리당원의 표보다 50~60배의 힘을 갖는 대의원이 존속하는 한 금권정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러나 잘못된 처방으로 당의 근간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24일 민주당 청원게시판에는 '구태적인 대의원제도 완전 폐지를 요구한다'는 게시글이 2만4,000여 명의 동의(동의율 48%)를 얻었다. 18일 시작된 이 청원은 "돈봉투 사건의 시발점은 국민의힘도 폐지한 대의원제에 있다"며 "이번 기회에 당원 중심의 깨끗하고 공정한 민주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이재명(친명)계 현근택 변호사도 지난 22일 "대의원제가 유지되는 한 돈봉투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지도부 선출뿐만 아니라 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당 대의원은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당직자 등으로 구성된다. 대의원 규모는 1만6,000~1만7,000여 명으로, 전체 권리당원(120만 명)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난 2022년 전대 당시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 비율로 투표 결과를 산출해 당대표를 뽑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의원 1명의 표는 권리당원 50~60명의 표와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지도부도 당원들의 빗발친 요구에 검토를 시작했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돈봉투 사건과 직접 연관은 없지만, 당무나 최고 지도부 선출 때 당원과 국민의 참여를 높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내대표 후보인 김두관 의원도 뉴스1 인터뷰에서 "대의원 체제를 유지하더라도 표의 등가성을 권리당원과 동일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내대표에 출마한 박범계 의원 역시 "줄을 세우는 당내 선거를 극복해야 한다"며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반면 사태의 원인을 대의원제로 돌리는 건 비약에 가깝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 수도권 의원은 "경비가 쓰이는 식사, 술자리가 대의원을 위해서만 있는 것도 아닌데 생뚱맞은 해결책"이라며 "그보다는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엄중 조치하는 게 가장 큰 쇄신방안"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을 지낸 안규백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대의원제에는 전국정당으로서 지역의 의사를 균형있게 반영하고자 했던 역사와 정신이 담겨 있다"며 "섣불리 제도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당의 역사와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을 잘 아는 대의원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면 강성당원에 의해 당이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다.

대의원제 축소 주장은 당내 역학관계의 변동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민감한 문제다. 2022년 전대 룰 논의 당시 친명계는 대의원 투표 비율을 축소하고, 권리당원 및 일반국민 여론조사 비율은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대의원 상당 수가 비이재명계 성향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반면 '개딸' 등 강성당원 다수는 이 대표의 핵심 기반으로 알려져 있다. 김두관, 박범계 의원도 범친명계로 분류된다.

장재진 기자
우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