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부터 국고보조금 1억만 돼도 외부 검증 받는다

입력
2023.04.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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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금액 기준 하향
"재정 누수 최소화"... 대상 4배 수준 늘 듯
시민단체·노동조합 등도 대상 포함 가능성

하반기부터 국고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벌이는 단체는 수령액이 1억 원만 돼도 돈을 제대로 썼는지 외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감시 대상이 4배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3일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19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 공고를 내고, 다음 달 29일까지 국민 의견을 접수한다.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을 받아야 하는 보조사업 또는 간접보조사업 금액 기준을 현행 3억 원에서 1억 원으로 하향해 검증 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내용이다. “국고보조사업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재정 누수를 최소화하려는 취지”라고 기재부는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르면 7월부터 개정령을 시행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 등 절차를 거쳐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검증 대상이 되는 사업 수는 크게 늘어난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조금이 1억 원 이상 지원된 사업은 3억 원 이상 투입 사업(9,079개)의 4배가 넘는 4만411개에 이른다. 결산 때 이들 사업 주체는 외부 검증을 거친 정산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외부 검증을 받으려면 비용이 드는 만큼 보조금 규모가 작은 경우 아예 수혜를 포기하는 단체가 적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보조금 지원 체계 손질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다. 작년 말 윤 대통령은 국고보조금이 급격히 늘었지만 정부 관리가 미흡했다며 지원 체계 전면 재정비를 지시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 때 보조금 규모가 59조6,000억 원(2017년)에서 102조3,000억 원(2022년)으로 71.6% 늘었고, 이 기간 중앙 정부 예산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4.9%에서 16.8%로 커졌다. 낭비된 재정도 어느 정도 이에 비례했으리라는 게 윤 정부의 인식이다.

표면적 명분은 재정 건전성 강화이지만, 실제로는 문 정부에서 지분을 키웠던 진보 성향 시민단체와 노동운동 진영을 위축시키려는 이념적 의도가 다분한 것으로 야권은 보고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보조금 운영에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에 지원 감축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인데, 회계 장부 공개를 거부한 노조 등이 대상에 포함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손보려는 것이 시행령만은 아니다. 연초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공언한 대로 보조금을 10억 원 이상 수령하면 회계 감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보조금법도 그 대상이다. 금액 기준을 3억 원으로 대폭 내려 감시 대상을 확 늘린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그러나 정부 재량으로 고칠 수 있는 시행령과 달리 여소야대 구도 국회 문턱을 넘어야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계 감사 대상 확대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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