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청소년들의 분투 ”그 아름다움을 보라”

입력
2023.04.24 04:30
20면
광주 고려인마을 청소년들
일본 작가 고이즈미와 협업
광주비엔날레 작품 선보여

광주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고려인 청소년 1,000여 명이 산다. 한국에서 일하는 부모를 따라온 경우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피란민까지,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선조의 땅을 찾았다. 문제는 정체성 혼란으로 고생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어가 서툴다. 학교에서 수업받기가 어려워 “밥만 먹고 집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한국과 고향 어디서 삶을 꾸릴지도 고민이다. 광주비엔날레의 미디어 설치작품 ‘삶의 극장’(2023년)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 고려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청소년 15명과 일본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47)가 협업해 제작됐다. 작가는 아이들에게 1932년 카자흐스탄에 설립된 고려극장의 사진 기록물을 보여주고 아이들 스스로 연극을 만들도록 했다. 아이들이 토론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카메라 3대로 찍은 영상을 프로젝터 5대로 전시장 벽면에 겹쳐 비춰준다. 프로젝터마다 편집된 영상의 길이가 달라서 벽면에는 언제나 새로운 화면이 구성된다. 영상에서 아이들은 군인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민중으로, 절규하는 얼굴로 나타난다. 지난 6일 광주에서 고이즈미를 만났다.



고이즈미는 영어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제작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정체성을 찾도록 돕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몇몇은 한국에 남기를 바라고 몇몇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들은 어디서 살고,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면서 “이 작업을 통해서 그들이 스스로를 새롭게 보여주고 재정의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보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자신들의 얼굴이 커다란 전시장에서 보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얼굴이 보이는 경험이 삶을 긍정적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이즈미는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하도록 만드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작업을 해왔다. 미국에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참전군인들과 프랑스에서는 군에 입대한 이민자 젊은이들과 작업했다. 이런 작업은 필연적으로 과거 제국주의 역사의 그늘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그가 일본에서 전시를 열기 어려운 이유다. 그는 “나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일본군의 잔혹함에 대해서 많은 작업을 해왔다. 일본의 공적 기관들은 그런 작업들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우익들의 ‘부정적 역사 지우기’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과거에 침묵하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적극적으로 과거를 부정할 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역사수정주의' 시각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일본인)는 전쟁을 경험한 조부모 세대에게 중국, 미얀마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는다”면서 “그때 누군가 ‘그래, 이것은 거짓말이다. 우리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믿는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부터 ‘위안부는 없었구나, 매춘이었구나’ 이런 식의 인상을 갖게 되고 이게 역사에 대한 일반적 생각이 된다.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이즈미는 작품에 사회의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측면을 복합적으로 표현한다. 그럼에도 오로지 ‘정치적 작가’로 인식된다면 아쉽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정치는 문화와 정체성의 큰 부분이다. 만약에 내가 삶의 정치적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내 작품의 깊이는 얕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냥 한동안 앉아서 봐 달라. 당신이 작품을 볼수록 당신은 점차 작품 안으로 흡수될 것이다. 천천히 젊은이들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라.”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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