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은 아직 괜찮고, 햄버거는 치워야겠네.”
편의점 진열대에 늘어선 무수한 물품 사이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햄버거 한 개가 ‘매의 눈’에 딱 걸렸다. 비워진 자리는 금세 새 제품으로 채워졌다. 청소도 얼마나 깨끗이 했는지 매장 바닥에 윤기가 돈다. “작은 얼룩 하나도 제 눈에 띄면 그냥 못 넘어가죠.” 직원 박현지(24)씨가 생긋 미소 지으며 밀대걸레를 잡았다.
현지씨는 발달장애인이다. 서울 서초구 장애인재활시설 한우리정보문화센터에 있는 편의점 ‘GS25 늘봄스토어’에서 2019년 1월 개장 때부터 일하고 있다. 처음엔 손님과 눈을 맞추는 일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4년이 넘는 시간은 그를 물품 발주까지 챙기는 ‘베테랑’으로 성장시켰다. 일주일에 하루는 늘봄스토어 서울도로교통공단점에서 일하는데 그땐 개점과 폐점도 도맡는다. 17일 편의점에서 만난 그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늘봄스토어의 모든 직원은 현지씨와 같은 발달장애인이다. 서초구와 GS리테일이 함께 운영하는 국내 첫 장애인직업교육형 편의점이다. 목표는 당연히 이들의 ‘자활(自活)’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물품 정리, 판매, 계산 등 직무 관련 교육을 수료한 뒤 성취도에 따라 늘봄스토어나 GS25 직영점에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월급도 최저임금 이상 받는다. 교육을 담당하는 신지안 한우리보호작업장 팀장은 “장애인 교육생들은 업무를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배우면 원칙대로 수행한다”며 “반복 업무도 덜 지루해하고 끈기 있게 해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비장애인처럼 ‘홀로서기’가 여의치는 않다. 직원들은 업무 능력과 인지 수준에 따라 두세 명씩 일한다. 예컨대, 물품 정리는 잘하지만 손님 응대를 어려워하는 직원은 대인관계가 원만한 직원과, 계산이 서툰 직원은 포스기를 잘 다루는 직원과 짝을 이루는 방식이다. 현지씨에게도 든든한 파트너가 있다. 친동생 현진(23)씨와 현선(20)씨다. 모두 발달장애를 앓고 있으나 세 자매가 뭉치면 두려울 게 없다.
첫째 현지씨는 손님과 친구가 될 정도로 사람을 잘 다루고, 둘째 현진씨는 성격이 꼼꼼해 물품 정리와 계산에 강점이 있다. 막내 현선씨는 말수는 적어도 표현력이 좋아 자매들의 소통 구심점 역할을 한다. 현지씨는 “늘 붙어 있다 보니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한층 안정감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고충이 없는 건 아니다.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밥벌이의 애환을 절절히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담배 종류와 위치를 외우는 일은 도무지 늘지를 않는다. 이름도 제각각이고 포장도 현란해 헷갈리기 십상이다. 한 달 차 직원 강수민(23)씨는 “집에서 유튜브 보면서 공부하고 물건 계산 연습도 열심히 하는데 담배 찾기는 정말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진상 고객’ 응대와 비교하면 애교나 다름없다. 물건을 빨리 찾아달라고 성화인 손님, 재고가 동났는데도 무조건 달라고 우격다짐하는 손님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다만 이런 어려움도 이들에게는 성장의 기회다. 돌발상황이 닥칠 경우 점장을 찾게끔 교육받았다. 교사들과 경험을 나누며 대처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이따금 곤란한 일을 겪을 뿐 친절한 손님이 훨씬 많아요. 계산을 끝낸 후 출출할 때 먹으라고 음료수나 초콜릿을 건네는 단골도 있답니다.”
늘봄스토어의 최종 목표는 발달장애인의 ‘자립(自立)’이다. 성실하고 반복 업무를 충분히 소화한다면 직장생활의 기본은 갖췄다는 뜻이다. 편의점이 다른 직종으로의 도전을 촉진하는 징검다리인 셈이다. 정영수 한우리보호작업장 원장은 “올해부터 지출 관리와 저축, 보이스피싱 대응 등 경제교육을 병행하고 있다”며 “독립된 경제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도 늘봄스토어 운영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다른 공공기관에 적극 전파하고 있다. 이미 강서구와 구로구는 서초구를 벤치마킹해 늘봄스토어를 개설했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늘봄스토어 같은 새로운 장애인 자활 모델을 개발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