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사기 대책과 피해자 지원 방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해 12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현장을 찾아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두달 뒤 건축업자 남모(62)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가 숨졌다. 이후 정부가 다시 대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 두 명이 또다시 세상을 등졌다. 피부에 와닿은 구제 대책이 신속히 마련되지 않으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피해자들의 외침이다.
19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전세사기 대책과 관련해 정부는 전세대출 기간 연장과 기존 대출을 연 1~2%의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대환 대출 프로그램(5월 시행 예정)을 내놨다. 하지만 경매가 완료됐거나, 전세금액이 3억 원을 넘거나 또는 부부 합산 연소득이 7,000만 원을 초과하는 피해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세대출을 일시 상환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이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경매 낙찰 자금 대출도 여전히 막혀 있다. 지난 17일 숨진 전세사기 피해자 박모(31)씨가 살던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 주민 김모(39)씨는 "이미 이 집에 들어올 때 3,000만 원 대출을 받아 겨우 갚아 나가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위해 대출을 더 받으라는 게 정부 대책"이라며 "아무리 이자가 낮다고 해도 없는 살림엔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긴급주거지원도 피해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지원 주택이 기존 생활권에서 멀거나 가구 구성원 수에 맞지 않게 비좁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6개월 단위(최대 2년)로 계약해야 하는 것도 기피 요인이다. 실제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인천에는 긴급지원 주택 238채가 있으나, 지난 두 달간 11채(4.6%)만 입주가 된 상태다. 입주 후 집이 좁아 나간 경우도 있다. 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는 "이사 한 번에 기본적으로 400만 원이 깨진다"며 "6개월간 임시 거주하기 위해 부담하기엔 큰돈이고 다른 집을 구하기까지도 빠듯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지원하려고 설치한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에 이어 두 번째로 1월 31일 설치된 인천전세피해지원센터는 지난 14일까지 832명이 방문했다. 하루 평균 방문자가 11.2명 수준이다. 센터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지원이 실효성 없다는 우려를 저희도 듣고 있다"며 "인력 부족 문제로 피해자들에게 지원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속적 홍보와 지원 확대 등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범정부 태스크포스(TF) 구성과 피해 주택 경매 일시 중단에 대해 정부는 이제야 추진한다고 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 피해자 조문 자리에서 '선 구제 후 회수'를 검토하겠다던 원희룡 장관의 말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