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플라스틱을 '뗏목' 삼아 망망대해로 밀려든 해양생물들이 있다. 육지와 맞닿은 해안가를 떠나선 살아남지 못할 거라 여겨졌지만, 번식까지 해가며 잘만 살아남았다. 칫솔에 붙은 말미잘부터 페트병 위 따개비까지. 바다 한가운데 플라스틱 쓰레기 섬을 서식지로 삼은 '해안 서식종'으로, 그 종류만 46종에 이른다. 무심코 버린 페트병 하나가 수백만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돼온 해양 생태계의 경계까지 허물어 버린 셈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 연구진은 과학 저널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이런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2018년 11월부터 석 달간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 수역의 '거대 태평양 쓰레기 지대(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잔해에서 게나 말미잘, 굴 같은 해안 서식종이 대거 발견됐다는 게 논문의 골자다. 해안가 바위틈에 붙어 파도를 견디며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해안가에서 1,000마일(1,609㎞) 이상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군집까지 형성해가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좀처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끈질긴 '생명력'이 되레 해안종의 거처가 됐다. 연구진이 그물, 칫솔, 양동이 등 플라스틱 잔해 105개에서 발견한 46종의 무척추 해양생물 484마리 중 80%가 해안 서식종이었다. 연구진은 2011년 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로 대규모 플라스틱 쓰레기를 '뗏목' 삼은 해양생물들이 태평양으로 대거 밀려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한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쓰레기장인 GPGP엔 1조8,000억 개의 플라스틱 파편이 해류를 따라 떠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게만 8만 톤에 육박하는 규모다.
문제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서식처를 마련한 생물들이 전체 생태계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모래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생물인 말미잘만 봐도 그렇다. 플라스틱 파편을 서식지로 삼은 이상, 말미잘의 온몸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뒤덮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게 연구에 참여한 오션 클린업의 마티아스 에거 박사의 말이다.
결국 인간이 풀어야 할 숙제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4억6,000만 톤에 달한다. 재활용 비율은 지금도 10%가 안 된다. 이렇다 할 긴급 조치가 없다면 향후 10년 사이 바다로 추가 유입되는 플라스틱양은 지금보다 2.6배 늘어날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폐기물 해양 유입이 향후 수십 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북태평양에서 관찰된 서식 패턴이 다른 해양 환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