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17일(현지시간) 공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 차종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전기차가 예상대로 모두 빠졌지만 국내 업계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칼자루 쥔 미국이 자국 차량만 포함시켰기 때문에 현대차·기아의 출발점은 독일과 일본 등 다른 나라 경쟁사 차량과 같아진 셈"이라며 "미국 시장에서 상업용 리스 차량을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18일 미 재무부와 에너지부는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 16종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6종을 포함해 22개 대상 차종을 발표했다. 2022~2023년식 테슬라 모델3와 모델Y, 쉐보레의 볼트(2022~2023년식)·이쿼녹스(2024년식), 포드의 F-150 라이트닝(2022~2023년식) 등이 대표적이다. 테슬라의 모델3 스탠다드 레인지 리어 휠 드라이브(2022~2023년식)와 포드의 E-트랜짓(2022~2023년식), 머스탱(2022~2023년식)은 보조금 절반(3,750달러)을 받을 수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중에선 크라이슬러의 퍼시피카와 링컨의 에비에이터 그랜드 투어링이 세액공제 전액(7,500달러)을 받을 수 있고, 포드 이스케이프와 지프의 그랜드 체로키 및 랭글러, 링컨코세어 그랜드 투어링 등은 절반의 보조금(3,750달러)을 받는다.
이 지침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라 해도 ①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넣으면 3,750달러 ②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을 40% 이상 사용하면 3,750달러를 각각 받는다. 두 조건을 다 충족해야 보조금 전액을 받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당장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리스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입장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IRA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상업용 전기차에 리스 차량이 포함된다고 알렸다. 기업이 사업 목적으로 사는 전기차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하거나 배터리와 핵심 광물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리스 판매 비중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독일과 일본 등 다른 나라 차량들도 보조금을 못 받게 된 만큼 미국 시장의 출발점이 같아진 점은 긍정적"이라며 "리스 차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앨라배마 공장에서 조립 중인 GV70 배터리를 미 정부의 조건을 충족하는 사양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2025년으로 예정된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 완공에 속도를 내는 방안도 꼽힌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조지아 공장이 완공되면 한 고비 넘기겠지만 그때까지 20개월가량은 버텨야 한다"며 "생산 시기를 2024년 말로 앞당겨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배터리 생산 물량을 조절하거나 조건에 맞게 바꾸는 등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GV70에 들어간 중국산 배터리를 (IRA 조건에 맞게) 바꾸고 조지아주 공장 완공을 내년 말로 당기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조금을 못 받더라도 프리미엄 차량의 상품성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 교수는 "GV70은 현재 미국서 탑 클래스로 평가받고 있다"며 "프리미엄 차량을 선호하는 고소득자들은 가격만큼이나 상품성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현대차는 상품성을 돋보이게 하는 마케팅을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