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질렀다. 살해 도구는 쇠구슬과 독. 그는 평소엔 입시 학원에서 자상한 실장(드라마 '일타 스캔들')으로 학생을 반기고, 그 외 시간엔 싹싹한 택시 기사(드라마 '모범택시')로 일하며 정체를 숨겼다.
두 드라마에서 신재하(30)는 사이코패스 같은 배역을 앳된 얼굴로 섬뜩하게 보여줬다. 그는 시청률 20%를 오르내린 '일타 스캔들'과 '모범택시' 시즌2의 '신스틸러'였다. 공교롭게 1월부터 4월까지 연달아 방송된 화제의 두 드라마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으로 똑같이 나와 시청자에게 그는 광기 가득한 배우로 각인됐다. '일타 스캔들'에서 신재하에게 죽을 뻔한 전도연도 '모범택시' 시즌2에서 독기 어린 그의 모습을 보고 "으이구, 또 나빠"라고 농담했다고 한다. 15일 '모범택시' 시즌2 종방 직전 서울 강남구 소재 카페에서 만난 신재하는 "동생이 '너희 오빠 집에선 괜찮지'라고 친구들이 자주 묻는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신재하는 그간 작품에서 두 드라마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에선 공시생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막일을 하는 청년으로 나왔고, 같은 해에 방송된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선 구김살 없는 고3을 연기했다. 지난해 봄 전역 후 그의 연기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2014년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로 데뷔한 뒤 오랫동안 소년의 틀을 깨지 못했던 그는 제대 전후에 잇달아 들어온 '일타 스캔들'과 '모범택시' 시즌2 대본을 받고 변화에 용기를 냈다. "어린 이미지를 벗는 게 숙제였다"는 신재하는 "병역 공백이 변화를 준비하는 시간이자 계기가 됐다"며 "배우로 활동하며 얼굴보다 이름을 각인시키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절감했는데 두 악역을 맡은 뒤 시청자들이 이제 내 이름을 불러 주더라"고 고마워했다.
배우로 이름을 찾기까지 그는 카메라 뒤에서 묵묵히 노력했다. '일타 스캔들'에서 학원 실장 역을 연기하기 위해 신재하는 직접 학원가를 찾아갔다. 드라마에서 색깔별 분필 준비를 확인하는 장면은 그가 낸 아이디어였다. '모범택시' 시즌2는 기독교복음선교회(JMS) 등 사이비 종교 파문과 '버닝썬 사태' 등을 연상케 하는 소재를 다뤄 그 현장에 접근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그는 "(드라마에 쓰인 내용이) 얼마만큼 현실이 반영됐는지, 실제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고 끝났는지 등을 확인한 뒤 연기했다"라고 했다. 그는 새 드라마 '악인전기'로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은 신재하는 2016년엔 무려 7개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했다. "냉정하게 봤을 때 전 스타가 될 수 있는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연기하는 걸 목표로 삼았죠. 바로 이어서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일이 끊어질 것 같았거든요." 불안감이 심해 그는 20대엔 마음 편히 놀러 가지도 못했다. "언제 오디션 통보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버틴 신재하는 "늘 쫓기면서 일했는데 이젠 좀 편안하게 작품과 내 삶에 집중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