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주광역시의 한 대규모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거진 무단 설계 변경 의혹 사건을 놓고 경찰의 수사 의지와 능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시공사가 바닥 기초공사 공법을 바꾸려면 주택건설사업승인권자(광주시)의 사업계획 변경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국토교통부의 민원 답변을 무시하고 또다시 국토교통부에 관련 질의를 하면서도 정작 질의서를 엉뚱한 부서에 보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구 옛 호남대 쌍촌캠퍼스 아파트(903가구) 시공사인 G건설이 사업계획 변경 승인도 받지 않고 기초공사 공법을 바꿔 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광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수사에 나선 건 2월 중순. 경찰은 G건설이 당초 연약 지반 강화를 위해 지중(地中)에 박기로 했던 콘크리트 파일(말뚝)을 박지 않고 기초공사를 진행했다는 범죄 첩보를 인지해 수사로 전환했다. 이 무렵 광주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한 뒤 G건설과 감리업체, 사업 주체 등 3곳을 주택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G건설이 일부 동(棟) 건물 지하 기초공사 중 무단 설계 변경을 한 뒤 말뚝을 박지 않은 채 바닥면 전체에 통으로 기초판(정리된 땅 위에 설치하는 건축물의 최하부 콘크리트 구조)을 시공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당시 수사는 감리업체 내부 직원의 공익 신고로부터 비롯된 터라,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게다가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월 발생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수사 당시 시공사의 무단 설계 변경을 밝혀내고 관련자를 형사처벌했던 경험도 있었다. 실제 경찰은 지난달 초 의혹들을 뒷받침할 참고인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 행보는 수상쩍다. 경찰 일각에서조차 G건설 등의 주택법(제15조) 위반이 똑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수사 강도와 속도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사실 경찰이 G건설의 무단 설계 변경에 대한 위법성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국토부는 2019년 5월 "주택법 시행규칙에 따라 기초공사 설계 변경은 사업계획 변경 승인을 받은 후 시행해야 한다"고 민원 회신 내용을 공개했다. 주택건설공사 감리업무 세부 기준(제16조)도 감리자는 사업계획승인권자의 사업계획 변경 승인이 있기 전에는 시공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사팀은 돌연 지난달 30일 국토부에 기초공사 공법(설계) 변경이 광주시의 사업계획 변경 승인 대상인지를 질의했다. 경찰이 수사를 위한 기반 공사를 하고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황당한 것은 수사팀이 국토부에 질의하면서 담당 부서인 주택건설공급과가 아닌 주택정책과에 질의서를 보내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점이다. 실제 주택정책과가 주택건설공급과로 넘긴 질의서는 담당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은 채 열흘 이상 방치됐다. 국토부는 12일 한국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이 기초공사 공법 변경은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의 2010년 대구지법 항소심 판례를 찾아내 질의서에 첨부한 것도 석연찮다. 해당 판례는 이번 수사와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판례는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시행 인가 때 건물 기초공사 공법에 관한 게 사업계획 승인 신청서 기재 사항이 아니라면 사업시행자가 변경 승인을 받지 않고 공법을 바꿨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G건설 아파트 공사 사례와는 전제 조건이 다른 셈이다. 이 때문에 경찰 안팎에선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온다. 밖에서 보면 '봐주기'로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건을 신중히 처리하는 것일 뿐 봐주기 수사는 아니다"라며 "불법 여부가 결정되는 대로 현장 총책임자와 시공사 대표 등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