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재정사업의 추진 여부를 가늠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준을 완화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예타 기준이 조정되는 것은 지난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이날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사회간접자본(SOC),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총사업비 기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가 재정 지원 규모도 기존 300억 원 이상일 경우 예타를 거치도록 하던 것을 500억 원 이상으로 완화했다.
대신 기존 법안에 있던 ‘건설공사가 포함된 사업’이라는 표현을 고쳐 SOC 사업 범위를 도로, 철도, 도시철도, 항만, 공항, 댐, 상수도, 하천 및 관련 시설에 대한 건설공사로 구체화했다.
새 예타 기준은 SOC와 R&D 사업에만 적용된다. 지능정보화사업이나 중기 사업계획서에 의해 재정지출이 500억 원 이상 수반되는 사회복지, 보건, 교육, 노동, 문화ㆍ관광, 환경보호, 농림해양수산, 산업ㆍ중소기업 분야의 신규 사업은 현행 기준이 유지된다.
예타 대상 기준이 변경되는 것은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경제, 재정규모가 성장했지만 선정 기준은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어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다만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선심성 퍼주기 예산 사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예타 기준이 완화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심사 절차를 밟고 있는 사업 중 일부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사업이 서산 공항 사업(509억 원)이다.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자 김태흠 충남지사가 “사업비를 500억 원 이하로 조정하거나, 예타 대상 기준을 1,000억 원으로 올리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추진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예타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 중에서는 인천 도심과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송도5교 고가차도 건설공사(970억 원)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재정준칙 도입과 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동시에 발표했고, 여당도 이를 연계해 추진할 계획이었다. 다만 재정준칙 법제화가 지연되면서 우선 예타 기준 완화부터 처리하게 됐다.일각에선 재정준칙이 없이 예타 기준을 완화하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지역구 의원마다 선심성 사업·공약을 남발해 재정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여야가 잠정 의결한 내용”이라며 “이의 없이 정부와 같이 동의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여당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잠정 합의된 사안인데 재정준칙과 함께 의결하려다가 합의된 사안부터 하자고 해 의결이 된 것”이라며 “재정준칙은 간사 간 협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처리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이르면 오는 17일 기재위를 거쳐 이달 중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