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의 ‘깜짝 감산’ 발표 이후 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겨우 진정된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고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안개(불확실성)’가 한 겹 덧씌워진 모양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 대표적 매파 인사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3일(현지시간)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의 감산 결정에 대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연준의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원유 공급 감소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연준의 ‘물가와의 전쟁’에 걸림돌로 작용하면 기준금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제유가는 OPEC+의 추가 감산 발표를 기점으로 상승 전환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6.28% 오른 배럴당 80.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리 인상 전망에도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이날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서 연준의 5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 인상) 가능성은 53%로 높아져 동결 전망을 앞질렀다.
만약 연준이 다시 긴축 속도를 높인다면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상 카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장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선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2%까지 떨어지는 등 물가가 한은의 예상 경로대로 가고 있어서다. 김웅 부총재보는 4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면서 2월 전망 당시 예상한 대로 상당 폭 낮아졌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현 수준(3.5%)에서 한 번 더 동결하고 국제유가나 경기, 환율 등 각종 변수의 추이를 지켜볼 시간 정도는 번 셈이다.
시장 일각에선 이번 산유국 감산 결정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로 원유 수요 자체가 줄고 있어 공급 측면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할 것이란 논리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올해 하반기 이후 90달러를 넘어서는 가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는 이상, 인플레이션에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