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로 뚝, 바뀐 입시로 뚝... 봉사 '온정' 반토막

입력
2023.03.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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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새 봉사자 2900만→1500만 급감
기업들, 봉사 비용 줄이는 '짠물' 경영
대입 반영 안 되자 중고생 일손도 뜸해
"취약계층 타격, 봉사 독려 방안 시급"

1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한 시립 노인종합복지관. 앞치마와 흰색 위생모, 일회용 장갑을 착용한 직원들이 30분 뒤 시작하는 무료급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최근 살인적 고물가로 이곳에서 든든하게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 어르신들이 늘면서 식수 인원은 300명에 육박한다. 그런데 재료 준비부터 조리, 배식, 설거지, 청소까지 급식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은 단 7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엔 적어도 자원봉사자 5명이 일손을 보태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이제 고정 인력이 모든 준비를 전담해야 한다. 복지관 관계자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어 사무 직원들까지 배식에 동원되곤 한다”고 토로했다.

사회복지시설과 보건의료기관, 민간 자원봉사단체들이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취약계층을 상대해 재정적 한계가 뚜렷하다. 그나마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한 일손을 메워줬는데, 몇 년 새 규모가 부쩍 감소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봉사에 주저하는 데다, 봉사활동이 입시 ‘스펙’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청소년 자원봉사자마저 감소한 결과다. 자원봉사 ‘기근’ 현상이 장기화하면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고물가에 기업들 '봉사 현장' 떠나고

자원봉사 감소 추세는 수치로 확인된다. 19일 행정안전부의 ‘1365자원봉사포털’ 통계를 보면, 2019년 2,912만 명이던 자원봉사자 수는 2020년 1,399만 명, 2021년 1,364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때만 해도 감염병 유행과 대면 접촉 제한이 길어진 데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거리두기 조치가 전면 해제된 지난해에도 자원봉사 규모는 1,488만 명으로 전년 대비 9.1%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원봉사자가 돌아오지 않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먼저 기업이 봉사 재개를 꺼리고 있다. ‘사회적 책임’ 경영이 강조되면서 코로나19 사태 전 기업들은 직장인, 학생들이 봉사하기 어려운 평일 낮 시간대에 시설마다 5, 6명씩 인원을 보내주던 자원봉사의 ‘큰손’이었다. 일상 회복 후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고물가와 글로벌 경기침체 등 각종 리스크가 겹치면서 기업들이 일종의 ‘비용’인 봉사 비중을 줄이고 있다는 게 사회복지사들의 얘기다. 서울 한 사회복지관 관계자는 “많을 땐 정기적으로 봉사자를 보낸 기업이 20곳이나 됐다”면서 “요즘 연락을 하면 ‘정해진 회사 방침이 없다’ 같은 미온적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입시' 도움 안 돼 청소년들도 외면

청소년 봉사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그해 말 교육부는 “2024학년도 입시부터 개인 봉사활동 실적은 대입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2019년 865만 명에 달했던 10대 이하 자원봉사자 수는 지난해 160만 명까지 쪼그라들었다. 감소폭은 전체 봉사자보다 훨씬 두드러진다. 여파는 컸다. 서울 중구 신당종합사회복지관은 2005년부터 청소년ㆍ대학생 20여 명으로 봉사동아리를 꾸려 어르신 대상 말벗, 송편 빚기 봉사 등을 진행했는데, 최근에는 사실상 대학생 100%로 운영하고 있다. 광진구 자양종합사회복지관도 원래 중ㆍ고생이 했던 어르신 밑반찬 배달 봉사를 얼마 전부터 성인 봉사자에게 맡기고 있다.

대학생 봉사자가 늘고 있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대학 내 ‘사회봉사 학점 인정’ 과목이 부활하며 의무 봉사 시간을 채우려는 대학생이 많아졌다. 다만 대학생들은 시험기간이나 방학, 개강 등 일정에 따라 봉사 일정이 들쭉날쭉하다는 게 문제다. 송낙준 신당종합사회복지관 지역조직팀장은 “봉사의 사회적 필요성과 의미가 큰 만큼 학교, 기관, 기업 등 단체 차원에서 구성원들에게 봉사 기회를 제공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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