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냥 울어도 괜찮아"… 칠곡매할매글꼴, 위로·희망 꽃피운다

입력
2023.03.20 04:30
제주서 '전이수×칠곡할매글꼴 특별전'

15세 소년 동화작가 작품 40점에
일흔 넘어 한글 깨친 할머니들이
'칠곡할매글꼴'로 작품 설명해 감동
'괜찮아' 주제, 내달 16일까지 열려

개회식에 참석한 김영분 할머니
"그림 보니 엄마ㆍ동생 생각 가득" 
전 작가 "글자에 삶의 흔적 배어…
할머니들 모습 그리며 생애 표현"

제주도지사 "세대를 넘어 미래 모습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기회 될 것"

삐뚤빼뚤 투박하지만 왠지 더 정감이 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에도 탑재됐다. 연하장에 쓸 정도로 대통령도 반한, 지난 2020년 경북 칠곡군이 개발해 무료로 공개한 글씨체 ‘칠곡할매글꼴’이다. 가난 때문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가 뒤늦게 일흔이 넘어 성인문해프로그램을 통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 중 5명의 글씨체를 기반으로 개발했다. 할머니들의 이름을 딴 권안자체, 김영분체, 이원순체, 이종희체, 추유을체가 그것이다.

칠곡군에 따르면 평균나이 83세에 육박하는 할머니들의 글씨체와 올해 열다섯 영재 동화작가의 글과 그림이 제주에서 만났다. 지난 16일 개막, 내달 16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걸어가는 늑대들'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이수×칠곡할매글꼴 특별기획전'에서다.

'괜찮아'를 주제로 전이수 작가의 작품 40점이 선보인다. 전 작가 작품 옆이나 아래엔 칠곡할매글꼴로 된 작품설명이 나란히 내걸렸다. 또 칠곡할매들의 인생과 삶, 애환이 녹아 있는 시집과 시화 10점도 별도로 전시된다.

눈물을 흘리며 서 있는 누군가를 양팔로 꼬옥 안아주는 작품 아래 칠곡할매글꼴로 된 '울어도 괜찮아. 넌 소중한 존재야'라는 설명이 걸린 작품도 눈에 띄었다. 어린 자녀를 안고 있는 어머니 그림 옆에는 '엄마 우리 많이 아팠잖아' '괜찮아 그냥 울어도 괜찮아' 등의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칠곡할매의 작품 중에는 지난달 94세로 영면한 박금분 할머니의 ‘가는 꿈’도 보였다.

김영분(77) 할머니는 "그림을 보니까 엄마 생각도 나고 동생 생각도 난다"며 "자식들이 말 안들을 때마다 엄마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고 이원순(86) 할머니는 "슬프면 할머니가 위로해주고 달래주겠다"라며 "울지말고 웃으면 좋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개막식에 참석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에서는 할머니를 '삼춘'이라고 부른다"며 "김영분 삼춘, 이원순 삼춘"이라고 했다. 그는 "세대를 넘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칠곡과 제주의 시민들이 더 행복해지는 특별한 인연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5명의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중 이원선 김영분 할머니와 전이수 작가, 오 지사와 김재욱 칠곡군수 등 100여 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낙동강 물과 제주 바닷물을 항아리에 담아 합치는 세리머니로 대한민국의 화합을 기원하기도 했다.

전 작가는 동생 우태 군과 가로 120㎝ 세로 180㎝ 크기의 도화지에 할머니 얼굴 두 개를 겹치는 즉석드로잉도 선보였다. 전 작가는 "글자 하나하나에 삶의 짙은 흔적이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존경스럽고 뿌듯하다"며 "할머니들의 젊은 모습과 지금 모습을 같이 그려 할머니들의 생애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정상 개막식에 함께 못한 할머니들은 영상편지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종희(81) 할머니는 "시간이 지나니 어려운 일이라도 다 괜찮더라"라며 "눈감고 생각해보니 세월이 보약이더라"라고 했다. 또 추유을(89) 할머니는 "공부가 다가 아니더라"라며 "성격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축하영상에서 "칠곡할매글꼴이 제주도까지 가서 관광객을 맞이한다고 하니 기쁘다"라며 "전 작가의 그림을 설명하는 데에도 칠곡할매글꼴이 제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최현배 선생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황기념사업회장과 정희용 국회의원, 정재환 칠곡할매글꼴 홍보대사를 비롯한 유명 가수 등도 축하영상을 보내 격려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도 "그림에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으나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제주의 자연을 닮은 것 같다"며 "늦게 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와 삶의 경험을 글로 남겨주면 잘 새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 류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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