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감소하지 않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손을 맞잡았다. 서로 껄끄러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안전과 보건 문제만큼은 힘을 모으기로 약속한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15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제17차 전체회의를 개최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이후 첫 노사정 합의"라며 "실질적으로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특정 의제에 합의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경사노위 내 여러 의제별 위원회 중 하나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2021년 12월 17일 발족해 15개월간 논의를 이어 왔다. 노동계(한국노총)와 경영계(대한상의·경총·중기중앙회), 정부(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와 공익위원들이 위원회에 참여했다. 위원장은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다.
노사정 세 축 모두 산재 감축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공감하면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강 위원장은 "그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에 이어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사망사고가 실질적으로 줄지 않았다"라며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데, 준비되지 않은 중소기업을 어떻게 도와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위원회가 시작됐고 이번 합의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합의문은 제도뿐 아니라 전반적인 안전 문화 개선까지 강조하고 있다. 먼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근거한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심의위원회' 기능을 산재 보상과 산재 예방으로 분리하기로 했다. 강 위원장은 "그동안은 위원회가 보상 위주로 돌아가면서 예방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예방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위원회를 따로 구성해 산재 예방에도 노사가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노사가 함께 "노사 문제를 안전보건 문제와 결부시키지 말자"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노사 간에 갈등이 생기면 중요한 산업안전 문제가 있더라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둘을 분리하자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노동계는 안전 문제를 노사 문제로 끌고 가지 말아야 하고, 사측도 안전 문제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협의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다만 이번 합의문은 선언 수준이라 강제력은 없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만 참여해 '절반의 합의'라는 지적도 따라붙는다. 강 위원장은 "성실한 이행을 위해 노사정이 실무단체를 바로 구성해 합의 사항을 하나하나 잘 이뤄지도록 협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공익위원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합의에 원칙적인 내용이 많지만 산재 보상과 안전보건의 분리, 그리고 노사관계와 안전보건의 분리와 같은 중요한 원칙이 천명됐다"라며 "이행되지 않는 구체적인 합의보다는 이런 원칙을 세우는 것이 더 의미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