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배우는 호명되자 환호하며 일어났다. 영화인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축하했다. 량쯔충은 “여성들이여,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며 수상을 자축했다. 1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로 아시아계 최초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량쯔충의 수상 소감은 역설적으로 지난 시간의 역경을 암시했다.
올해 아카데미 배우상 수상자들은 한계를 극복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경력 단절을 이겨냈고, 신체적 고통을 넘어섰다.
말레이시아 출신 량쯔충은 원래 전공이 발레였다. 4세 때부터 익힌 춤은 영국 왕립무용원 수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척추를 다치면서 발레리나의 꿈을 접었다. 1983년 미스 말레이시아가 되며 인생 행로를 바꿨다. 홍콩 영화제작자의 눈에 띄어 1984년 영화 ‘범보’로 데뷔했다. 활동 초기부터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출세작은 ‘예스 마담’(1985)이었다. ‘예스 마담’은 남성 쿵푸 스타 위주였던 홍콩 영화계에 여성 액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인기 절정이던 1987년 홍콩 사업가와 결혼하며 은퇴했다. 1990년 이혼 후 연기에 복귀했다.
량쯔충은 1997년 ‘007 네버 다이’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와호장룡’(2000)과 ‘게이샤의 추억’(2005) 등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에 출연했으나 배우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에는 아시아계 배우에 대한 편견이 심각했다. 연기 활동을 지속했으나 대중의 환호나 수상 영예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전성기는 2000년대 중반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내리막길을 걷던 량쯔충은 환갑에 출연한 '에에올'로 배우 인생 전환기를 맞았다.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힘겹게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에블린을 연기해 골든글로브상과 미국배우조합(SAG)상 등 40여 개의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2일 오스카 수상은 화룡점정이었다. 95년 아카데미 역사에서 백인 아닌 여성이 이 상을 받은 것은 2002년 ‘몬스터 볼’의 핼리 베리와 량쯔충밖에 없다. 량쯔충은 “오늘밤 저를 보는 모든 작은 소년들과 소녀들에게 저의 수상이 희망과 가능성의 신호등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키 호이 콴은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 시상자인 아리아나 더보즈가 수상자 발표를 하며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콴은 1971년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태어났다.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그의 가족은 1978년 보트를 타고 조국을 벗어났다. 홍콩 난민 캠프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콴은 ‘인디아나 존스’(1984)에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열린 오디션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눈에 들어 덜컥 캐스팅이 됐다. 콴은 ‘인디아나 존스’에서 꼬마 택시 운전사 숏을 연기하며 깜짝 스타가 됐다. 소년들의 모험을 다룬 ‘구니스’(1985)에도 출연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이 되자 일감이 뚝 끊겼다. 홍콩 영화 ‘무한부활’(2002)을 끝으로 연기 이력은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콴은 스태프로 일하며 영화현장에 남았다.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재개했다. ‘에에올’의 대니얼 콴 감독이 2019년 트위터를 하다 콴을 발견했다. 콴이 연기한 웨이먼드는 에블린의 남편이다. 콴은 이 역할로 골든글로브상과 미국배우조합(SAG)상 남우조연상 등 50개 넘는 상을 받았다.
콴은 “저희 엄마가 84세로 집에서 (TV로) 시상식을 보고 있다”며 “엄마, 저 아카데미상 받았어요”라고 감격스러워했다. 트로피에 2차례 격렬하게 키스하고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저의 여정이 보트에서 시작됐다”며 “(여정이) 여기 할리우드 가장 큰 무대에서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하다”를 연발한 후 “이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외쳤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렌던 프레이저 역시 인간 승리를 보여줬다. 1990년대 후반 영화 '미이라' 시리즈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부상에 따른 경력 단절을 겪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는 등 우여곡절 삶이 이어졌다. 그는 '더 웨일'에서 죽음을 앞둔 초고도비만 중년을 연기하며 오스카를 품었다. 프레이저는 흥분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중 우주가 있다면(자신의 인생에선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는 의미) 이런 것이겠군요”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에에올'의 제이미 리 커티스는 65세에 오스카 후보에 처음 올라 첫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그는 유명 배우였던 아버지 토니 커티스와 어머니를 언급하며 눈물을 글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