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베트남 하노이 꺼우저이의 한 카페. 삼삼오오 모여 앉은 남성들이 대화 도중 담배를 물었다. 실내 곳곳에 자욱한 연기가 퍼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노상에서 음식을 만드는 식당 주인의 입에도, 오토바이 기사의 손에도 담배가 있었다. 흡연에 관대한 베트남 사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풍경이 조금은 줄어들 전망이다. ‘흡연 천국’으로 불리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흡연율 감소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선 탓이다.
6일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베트남 재무부는 담배 개별소비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담배 개별소비세는 소비자 판매가의 38.85%를 차지하는데, 이를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구체적인 인상폭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50%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베트남 담배 개별소비세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물론, 브루나이(81%) 태국(70%) 싱가포르(69%) 등 다른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아세안 10개국 중 베트남보다 낮은 나라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정도다.
베트남 정부가 '세금 인상' 카드까지 꺼낸 건 보건당국의 금연 확산 노력에도 흡연 인구가 좀처럼 줄지 않아서다. 2018년 기준 남성 45.3%가 담배를 피우는데, 한국의 성인 남성 흡연율(34%)뿐 아니라 베트남 정부 목표치(37%)보다도 높다. 게다가 흡연 인구의 56%는 20세 이전에 담배를 손에 대기 시작한다. 길거리는 물론, 공공장소와 식당에서도 흡연이 허용돼 건물 내에서도 망설임 없이 담배를 무는 상황이다.
높은 흡연율 이유의 하나는 저렴한 담뱃값이다. 베트남에서 담배 한 갑 평균 가격은 3만 동(약 1,600원) 안팎이다. 1,000원 이하의 싼 담배도 많다. 국민소득 중하위권 국가 중에서도 가격이 낮은 편이다. 결국 베트남 정부의 대책은 ‘죄악세’를 물려 흡연 억제에 나서기로 했다는 얘기다. 베트남 식약처는 “흡연율 감소 목표 달성을 위해 더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다른 동남아 국가도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뱃세를 올리거나 세율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흡연 대국’ 인도네시아는 올해 연초와 전자담배 소비세를 각각 평균 10%, 15%씩 올렸다. 내년에도 같은 비율의 인상이 예고돼 있다. ‘성인 남성 흡연율 세계 1위’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담배 소비 시장이라는 오명을 씻어내려는 조치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성인 남성 63%가 담배를 피운다. 만 10~18세 청소년 흡연율은 10%에 육박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값싼 담배가 높은 흡연율로 이어진다고 판단, 세금 인상에 나선 셈이다. 담배 한 갑 가격은 2만~3만 루피아(약 1,700~2,500원) 정도다.
지난 5년간 담뱃세를 올리지 않았던 싱가포르도 지난달부터 담배 소비세를 15% 인상했다. 말레이시아는 아예 2005년 이후 출생자에 대한 담배 판매 금지 법안을 추진하며 ‘점진적 금연 국가’가 되는 방안을 선택했다.
다만 담뱃세 인상 여파로 암시장이 조성되고, 불법 거래가 횡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2015년 말레이시아가 담뱃세를 40% 인상하자 밀수입이 늘면서 밀수 담배가 전체 시장의 60%를 장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