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에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50% 이상 비싼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어, 경영계에서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칫 탄소중립 실현에 앞장선 기업들의 의지를 꺾고 재생에너지 사업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PPA(Power Purchase Agreement·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 요금제 개선 요청을 담은 건의서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에 전달했다고 2일 밝혔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기 위한 글로벌 캠페인 RE100의 한 이용 수단인 PPA 사업이 지난해 9월 국내에 도입됐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추진 중인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PPA 도입을 검토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상의 관계자는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위해 PPA 도입을 결정한 대기업(중견기업 포함)이 벌써 네 곳이나 된다"며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기업도 수십 곳"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전 측이 지난해 12월 PPA 도입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용 요금제를 새로 만들면서 발생했다. PPA 계약으로 기존보다 이들 기업이 한전으로부터 받는 전기를 덜 쓰다 보니 회사로서는 손실이 우려된다며 기존 산업용 전기 요금보다 높게 기본요금을 정한 것이다. 기업들은 PPA를 사용하더라도 태양광·풍력·수력·지열 등 PPA 발전원의 절대 용량이 적은 데다 발전량 변동성이 커 부족 전력을 한전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전 측의 PPA 기본요금은 ㎾당 9,980원으로 산업용(6,630원)보다 50.5%(3,350원) 높고, 특히 사용량이 많은 경부하 시간대(오후 10시~오전 8시)를 가장 높은 사용 요금으로 매겨 대규모 사업장일수록 타격을 받도록 설계했다. 반도체, 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 산업군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는 게 상의 설명이다.
실제 상의가 지난달 13~21일 RE100 참여 기업과 협력사 321개사를 대상으로 PPA 요금제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86.5%가 '손해가 발생한다'고 했다. 76.4%는 '부정적 영향 또는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PPA 요금제 적용 시 대기업은 연간 60억~100억 원, 중견기업은 10억여 원의 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경영계 주장이다.
상의 측은 "한전이 독점적 공급자라는 힘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시장 성숙을 방해한 꼴"이라고 지적한다. 설문을 통해서도 제조기업들은 전기요금으로 인한 손해 발생 시 ‘검토 보류’(62.2%), ‘추진 중단’(24.3%), ‘계약 파기’(5.4%) 등을 대응책으로 내놓으며 사실상 PPA 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결국 국가적 탄소중립 정책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탄소중립 이행,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미국과 유럽은 자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산업 지원법을 마련하며 적극 실천하고 있다"며 "재생에너지를 선도적으로 활용하려는 기업에 부담을 주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PPA 요금제는 재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기본요금은 올렸지만, 전력량 요금 일부 구간(오전11시~정오, 오후1시~오후6시 등)은 낮춰 실제 전기요금 인상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