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자정 직전(현지시간), 그리스 중부 지역에서 열차 2대가 정면충돌해 최소 38명이 숨졌다. 부상자도 80명이 넘는다. 같은 선로 위 반대방향에서 마주 오던 여객열차와 화물열차가 충돌한 탓에 피해가 컸는데,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그리스 중부의 테살리아주 라리사 지역 인근에서 발생했다. 수도 아테네에서 북부 도시인 테살로니키로 이동하던 여객열차가 같은 선로 반대 방향에서 오던 화물열차와 충돌했는데, 여객열차에는 승객 약 350명과 직원 20여 명이 탑승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타스 아고라스토스 테살리아주 주지사는 그리스 공영방송 ERT에 충돌 당시 여객열차 앞부분 4개 량이 탈선했고, 맨앞 객차 2개는 화재로 전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끔찍한 밤이다. 그 광경을 묘사하기 어렵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스 소방당국과 경찰은 현재까지 38명이 사망하고 85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바실리스 바르타코야니스 그리스 소방청 대변인은 “소방관 150명과 구급차 40대가 즉시 출동했고, 화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인근 병원에 비상경보를 발령했다”고 말했다. 병원에 이송돼 치료 중인 부상자들 가운데 최소 25명은 중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구조·수색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인명피해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독일 DPA통신은 "불행히도 아직 많은 이들이 열차의 잔해 밑에 있다"는 한 구조대원의 말을 전했다. 구조 작업엔 차량과 잔해를 들어 올리기 위해 크레인 4대 등 중장비들이 동원됐고, 군대도 현장 지원에 나섰다. 화재로 인해 짙은 연기가 차 있어 구조대원들은 밤새 헤드램프를 착용한 채 수색 작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자들은 충돌 순간을 '악몽'이라고 표현했다. 열차에 탑승했던 스테르지오스 미네미스는 로이터통신에 “‘빅뱅 충돌’에 필적하는 소음이 들리고, 악몽 같은 10초 동안 몸이 뒤집히고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탈출도 쉽지 않았다. 여객열차 네 번째 차량에 탔었다는 한 10대 승객은 가방으로 유리창을 깨고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했다. 그는 "사고 당시 급제동이 걸리는 게 느껴졌고, 불꽃이 튀며 열차가 급정거했다"고 말했다. 다른 생존자도 창문과 유리 위를 기어간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경미한 부상을 당한 승객 중 194명은 테살로니키로, 20명은 라리사로 각각 이송됐다.
타노스 플레브리스 그리스 보건장관은 “희생자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은 여객 열차 탑승객과 관련해 "직전 주말이 연휴 마지막 날이었고, 수도에서 열리는 축제를 즐기고 귀가하던 젊은 승객들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불투명하다. 아고라스토스 주지사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도 한 사람(운전자)은 다른 열차가 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일각에선 그리스의 노후화된 철도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많은 열차가 여전히 단일 선로로 이동하고, 신호 및 자동 제어 시스템도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