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와 성균관을 유지한 건 '소 잡는 노비'의 피와 땀이었다

입력
2023.03.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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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노비와 쇠고기'

"성균관에서는 지금도 소를 잡는가? (...) 국법은 제쳐두고서라도 수선지지(성균관)가 '도사(주로 백정이 고기를 공급하는 가게)의 소굴'이 되었으니, 어찌 추하지 아니하냐? 저 유생들과 그 선생들은 어찌 엄하게 금지하지 않는단 말이냐?"

1602년, 선조의 명이다.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 '성균관'과 '소 도축'이라니?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이는 사료에 촘촘하게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다. 500년 조선왕조와 성균관이 소를 도축해 고기를 팔던 노비들의 피와 땀으로 겨우 유지됐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담은 책이 최근 발간됐다.

책 '노비와 쇠고기'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미천한 신분인 노비와 고급 식재료 쇠고기가 무슨 연관성이 있다는 걸까. 벽돌책 두께에, 137쪽에 이르는 꼼꼼한 각주만으로 지레 압도되기 쉽지만, 큰맘 먹고 표지를 여는 순간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에서 소 도축과 쇠고기 판매는 불법이었다. 갑오개혁 후 '포사규칙'이 제정돼 세금을 공식적으로 거두기 전까지 '원칙적'으로는 말이다. 현실에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에서는 누구나 쇠고기를 사서 먹을 수 있었고, 왕실과 관료 등 지배계급이야말로 쇠고기의 주 소비자였다. 연산군은 날고기를 씹어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왕과 조정은 애초부터 쇠고기 도축과 유통을 막을 의지조차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선은 쇠고기로 겨우 명맥을 이어간 '쇠고기 국가'였다. 소를 도축하고 쇠고기를 유통하는 '반인(泮人·성균관이 소유한 공노비)'을 수탈하면서 말이다. 17세기 무렵 조선은 반인이 운영하는 '현방'에 한해 쇠고기를 팔게 하는데, 여전히 불법인 터라 '속전(벌금)'을 물고 영업을 했다. 성균관은 그 수익을 요구했고 형조·한성부·사헌부 등 '삼법사'까지 단속을 빌미로 속전을 수탈했다. 사실상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과 사법기관은 반인과 현방이 없으면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과 기강이 엉망이었다.

하나, 적극적으로 무능한 권력에 저항하며 신분제가 폐지될 때까지 반인은 끝끝내 살아남는데 그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착취에 저항해 단체 행동에 돌입하기도 한다. 성균관 식당에 식사 제공 노역을 거부해 유생들이 기숙사를 떠나는가 하면, 사흘 동안 문을 닫고 쇠고기를 공급하지 않아 서울 내 사람들이 한동안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제사상에 올려야 했다. 민심은 동요했고 지배계급은 충격에 빠졌다. 그 어떤 소설이나 사극이, 진짜 역사 속 결말만큼 역동적이고 통쾌하리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