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할 목적 없이 외국에서 태어나 복수 국적을 취득한 남성은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 현행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A씨가 국적법 제12조 제3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직계존속이 영주할 목적 없이 외국에 체류할 때 출생한 자는 병역의무를 해소해야 국적 이탈을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A씨는 2000년 미국 유학 중이던 한국 국적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국적을 이중 취득했다. 그는 2018년 법무부에 한국 국적을 이탈하겠다고 신고했으나,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반려됐다. A씨는 이에 "국적법에서 규정한 '영주할 목적'은 내심의 뜻으로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고 국적 이탈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그러나 "해당 조항은 복수 국적자가 국적 이탈을 편법적 병역기피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라며 "조항에 적힌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의 사전적 의미나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집행을 초래할 정도로 불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한 "해당 조항이 없다면 남성 국민이 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보유하게 됐다는 사정을 빌미로 한국 국적을 이탈해 병역의무를 회피해도 그 의무를 부담시킬 방법이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복수 국적자가 외국에 주소가 있어야만 국적 이탈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한 국적법 제14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역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청구인 B씨는 "조항의 문언('외국에 주소가 있는')만으로는 외국에 실거주하는 주소지가 있어야 하는지, 얼마나 오래 거주해야 실거주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불명확하고, 미성년자 등 외국에 생활 근거를 두기 어려운 사람들의 국적이탈 자유를 불합리하게 제한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에 대해 "외국에 생활 근거가 전혀 없는 데도 납세·국방 등 국민으로서 헌법적 의무를 면탈하고자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는 행위는 국가공동체의 존립·유지에 관한 기본 원리를 훼손할 수 있다"며 "외국에 주소가 있다는 표현은 법률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사용되며 실질적 생활 근거가 되는 장소를 뜻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