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이차전지 등 한국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중국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들 기업이 중국 외 지역에 제조시설을 마련할 수 있다는 관측인 만큼 이런 수요를 국내로 흡수할 유인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27일 공개한 '미국과 중국의 첨단 IT 공급망 재편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생산 시설을 자국 내 유치에 나서면서 중국에 치우쳤던 첨단 산업의 공급망이 여러 개로 나뉠 전망이다.
문제는 한국 수출구조가 중국을 경유해 제3국으로 중간재를 수출하는 방식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컴퓨터, 전기차 부품 등 첨단 산업이 포함된 전기 및 광학 기기 부문의 경우 한국의 전방 참여율(2021년 기준)이 57%로, 주요 20개국 중 가장 높은 형편이다. 전방 참여율은 국내 수출품이 수출 상대국의 중간재로 사용되는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수출을 통한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대한상의 측은 "중국으로 수출하는 한국 제품의 29.6%가 다시 제3국으로 수출된다"며 "공급망 재편 양상에 따라 수출 구조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당장 반도체 산업은 28일부터 미국에 생산시설 조성에 따른 보조금 신청을 하도록 돼 있어 사실상 중국 투자를 가로막는 미국 측의 규제가 시작됐다. 낸드플래시 반도체의 4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낸드 20%, D램 40% 중국 생산)는 시장 점유율 하락과 매출 감소라는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상황이다.
첨단 IT산업은 미국 규제에 따른 중국 시장 감소를 대체할 시장 발굴과 동시에, 추가 생산기지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예측했다. 중국도 미국 견제를 위한 자체 생산 확대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수밖에 없어 경쟁 심화에 따른 한국 기업의 탈중국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대한상의는 그 해결책으로 정부가 공적개발원조를 늘려 한국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도록 지원해야 하고, 특히 국내로 복귀할 수 있도록 고용창출금, 입지보조금 등 리쇼어링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을 벗어나려고 고민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중국 내수 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에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프라가 좋은 한국을 선택지로 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경훈 SGI 연구위원은 "미국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출 제품까지 제재하기 어려운 데다 기업들도 봉쇄령 등으로 중국에 대한 생산 불안감이 커졌다"며 "고부가가치 산업인 첨단산업은 생산비용을 낮추기보다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시하고 있기에 리쇼어링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