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안보지형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 외교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 1년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가 나아가야 할 외교 방향에 대해 위성락(2011년 11월~2015년 5월 재임), 박노벽(2015년 5월~2017년 11월 재임) 전 주러시아 대사로부터 제언을 구했다.
위 전 대사는 36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주미대사관 정무공사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협상 무대에서 활약했고, 박 전 대사는 외교관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모두 대사를 지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등 서방국가와 러시아·중국 간 대결 구도를 심화시켰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이들 국가로부터 외교적 협력을 끌어내야 하는 한국으로선 이전보다 어려운 '복합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를 받아 든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역대 최다 횟수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나 대북 성명은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도출되지 못했다.
위성락·박노벽 전 대사는 2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동맹 중심 외교'를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의) 동맹국이었다면 러시아가 쉽게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진영 구도의 심화는 동맹의 운용 문제이고, 동맹의 유무 자체가 국가안보의 큰 닻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위 전 대사는 "전쟁의 후과로 미국 대 중국·러시아 중심의 진영구도가 냉전 시기에 필적할 만큼 공고해진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 폭은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며 "경제·기술·안보 분야에서 서방과 긴밀히 연계해온 구조 속에서 동맹국과 같이 가지 않으면 국익 손상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연결고리로 미국과 서방과의 연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슬로건을 통해 국제사회에 국격에 걸맞은 기여와 관여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기대치 역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방한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최종현학술원 주최 특별강연에서 "한국이 군사적 지원이라는 특정한 문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계기로 마련된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항구적이고 정의로운 평화를 가져오고 국제사회의 안정을 보장하며, 유엔 헌장 및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하루빨리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역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위 전 대사는 "한국의 지정학적 환경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엄중한 과제를 풀기 위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 모두 적정 수준의 관여가 필요하다는 게 현실"이라며 "한미동맹을 강화하더라도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영 구도를 강조한 수사(레토릭) 수위는 낮추되, 이행(원조 등) 수준은 높이는 식의 조율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사는 창의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대립구도가 공고해지지 않는 것이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에도 이익"이라며 "그런 면에서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 차원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