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임신부가 "나를 석방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하나의 독립된 존재인 태아는 자신의 범죄 혐의와 무관한 만큼, 교도소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교도소 내 열악한 환경을 감안해 적어도 출산 전까지는 일시 석방해 달라는 주장인데, 찬반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내털리아 해럴(24)의 변호인은 최근 법원에 의뢰인을 석방해 달라는 내용의 인신보호영장 청구를 신청했다. 해럴은 현재 임신 8개월인 만삭의 몸이다. 임신 6주 때인 지난해 7월, 택시에 동승했던 다른 여성에게 총격을 가해 '2급 살인(우발적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7개월째 수감 중이지만 아직 형량이 확정되진 않은 미결수로, 올해 4월 재판을 앞두고 있다.
해럴의 변호인은 "출산 시점까지는 해럴의 구속 집행을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범죄 혐의가 있는 해럴과는 달리, 뱃속 태아는 죄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변호인은 "태아는 아직 자궁에 있으나, 엄마로부터 독립적인 권리를 갖고 있다"며 "태아로선 해럴의 구속 과정에서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사실상 태아에 대한 '불법 구금'이라는 것이다. 플로리다주 헌법은 물론, 미국 헌법도 태아를 '하나의 인격체(a person)'라고 규정한 만큼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해럴 측 주장이다.
교도소 환경이 태아에게 좋을 리 없다는 점도 석방 요구 이유 중 하나다. 임신부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갖춘 식사를 하기도 힘든 데다, "지난해 10월 이후 산부인과 의사를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정기적인 검진마저 못 받았다고 한다. 변호인은 "임신 초기 해럴이 폭염 탓에 내부 온도가 섭씨 40도 가까이 오른 호송 차량을 탄 적도 있었다"며 "현재 태아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산부인과 전문 인력의 도움도 없이 감옥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해럴의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빠른 석방을 촉구했다.
해럴과 태아의 '운명'은 법원에 달려 있지만,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유사 사례도 있다. 2018년 2월 브라질 대법원은 "임신 상태의 모든 피고인은 수감되지 않고 집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구금된 지 하루 만에 출산한 20대 여성이 곧바로 신생아와 함께 교도소로 돌아갔는데, 이 여성을 석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해럴이 수감 중인 교도소 측은 "태아 보호 서비스를 검토 중이며, 모든 수감자들이 시기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노력 중"이라는 입장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