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 그린 마쓰모토 레이지, 은하의 별이 되어 떠나다

입력
2023.02.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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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심부전으로 별세... 향년 85세

‘은하철도 999’, ‘우주해적 캡틴 하록’, ‘우주전함 야마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걸작 SF 만화를 창작한 일본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은하의 별이 됐다. 소속사인 레이지사는 그가 이달 13일 급성 심부전으로 별세했다고 20일 발표했다. 향년 85세.

마쓰모토의 큰딸이자 레이지사의 대표인 마쓰모토 마키코는 “만화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별의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만화가로서 계속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는 생각으로 달려 온 행복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는 추모문을 발표했다. 이어 “마쓰모토는 ‘먼 훗날 시간의 고리가 닿는 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늘 말했다. 그 말을 믿고 그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마쓰모토는 1938년 1월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에서 태어났다. 6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9세에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보고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만화 동인 모임인 ‘규슈만화연구회’를 결성해 동인지를 내고 ‘규슈 만화전’을 주재했다. 15세 때 만화 ‘꿀벌 대모험’이 잡지 공모에 당선됐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1957년 ‘검은 꽃잎’으로 정식 데뷔했다.

초창기에는 소녀만화잡지에 주로 연재하다 1968년부터 청소년·청년 대상 만화를 그렸다. 1974년부터 방영된 TV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에는 기획 단계부터 참가했다. 방영 당시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1977년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사회적 현상'이 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1978년부터 방영된 ‘은하철도 999’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우주해적 캡틴 하록’과 ‘천년여왕’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마쓰모토 레이지 애니메이션 부흥의 시대'였다. 한국에도 방영된 ‘은하철도 999’는 어머니를 잃은 데쓰로(철이)가 기계인간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겠다며 ‘메텔’이라는 신비한 여성과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가는 여정을 그렸다.

마쓰모토의 별세 소식에 동료 만화가와 성우 등 문화계 인사들이 추모의 글을 올렸다. ‘내일의 죠’로 유명한 만화가이자 마쓰모토의 절친한 친구였던 지바 데쓰야는 규슈에서 갓 상경한 19세의 마쓰모토와 만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배불리 먹지도 못하며 만화를 그리던 때를 회상하는 추도사를 공개했다. 지바는 “지난 몇 년 동안 친한 만화가 동료들이 하나둘씩 떠나서 아쉬웠는데, 당신도 떠나고 말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고 안타까워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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