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 노동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골프장 캐디뿐 아니라 학원 교사, 미용사, 운동 트레이너, 방송작가 등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더 늘어나게 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이달 15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부장 전기흥)는 2020년 9월 극단선택한 골프장 캐디 배모씨 유족에게 직속 상사 A씨와 골프장 운영사 건국대 법인이 약 1억7,000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인정된 첫 사례다.
골프장 캐디들을 총괄 관리하는 직책이었던 A씨는 다른 캐디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무전으로 배씨의 외모를 비하하고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배씨가 골프장 내 다른 직원과 분쟁이 생기자 골프장 측은 배씨가 일을 그만두도록 압박했고, 배씨는 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켰다면, 그 피해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며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노무제공자이므로, 이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앞서 중부지방노동청은 골프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하는 배씨 유족의 진정에 "망인은 골프장 캐디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직접 적용할 수 없다"고 회신했었다. 골프장 캐디는 근로계약이 아닌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4대 보험료 대신 사업소득세 3.3%를 떼는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그동안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라며 "특수고용노동자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와 위탁계약 노동자 등 사각지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만큼은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정부는 최근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언급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 그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뿐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갑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번 사건의 원고 대리인이었던 윤지영 변호사는 "그간 고용노동부가 괴롭힘을 판단하는 기준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한정됐었는데, 이번 판결로 그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