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노동자상 일본인이 모델"…법원 "명예훼손 아냐"

입력
2023.02.17 15:55
"의견 표명 불과... 공익성도 있어"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일본인을 모델로 제작됐다는 주장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2부(부장 양철한 이정형 구광형)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조각가가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부부 조각가인 두 사람은 2016년 8월 일본 교토의 단바망간기념관에 민주·한국노총 의뢰를 받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했다. 이후 서울 용산역과 제주항 제2부두 연안여객터미널 앞에도 노동자상이 설치됐다.

이 연구원은 2019년부터 노동자상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집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김씨 부부는 이에 2019년 10월 이 연구원을 상대로 3,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연구원의 허위 주장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김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씨는 조각가들이 노동자상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진 속 인물을 참조하거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밝혔다. 배상금으로는 1,000만 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조각가들이 불편했을 수는 있지만 인격권 침해는 아니다"며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이 연구원 주장은 허위사실이 아닌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각상이 무엇을 본떠 만들어졌는지는 감상하는 사람의 평가 영역"이라며 "이 연구원 발언이 단정적이긴 하지만 일반인도 노동자상이 일본인과 유사하다는 의견 표명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제작 배경이나 경위를 필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공공 조형물이므로 비판적 의견은 공공 이익과 관련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 주장에 공익성도 있다는 얘기다.

박준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