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울원자력본부 제2발전소 박승후(54) 운영실장은 지난해 3월 경북 울진 산불만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한울본부 부지까지 위협한 거센 불길에 원전 안전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화재 발생 직후인 지난해 3월 4일 박 실장은 휴가 중이었다. 울진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었지만 산불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현장으로 달려왔다. 박 실장은 “화재 당일 가족 여행을 간 사람부터 전날 야간 근무를 끝내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운전원 등 직원 767명이 한마음으로 회사로 달려왔다"며 "현장에서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서둘러 불을 끄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2일 한수원에 따르면, 한울원전 3호기가 국내 원전 25기 중 처음으로 '9주기 연속 무고장 운전'을 달성했다. 무고장 운전은 정비와 운전, 운영관리 능력 등 원전 운영의 안정성과 기술능력을 입증하는 지표다. 보통 1주기는 18개월로 핵연료를 투입한 뒤 다음 연료를 교체하는 시기를 일컫는다. 1998년 가동을 시작한 한울원전 3호기는 2008년 7월 25일부터 지난해 12월 28일까지 14년 5개월, 총 4,382일간 단 한 번의 고장 없이 전기를 생산했다. 8주기 무고장 운전 달성 당시, 경주 월성원전 2호기도 기록에 같이 이름을 올렸지만, 9주기 연속 무고장 운전은 한울원전 3호기가 유일하다.
울진 북면에는 6기의 한울원전과 1기의 신한울원전이 동해를 바라보며 줄지어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3호기만 무고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박 실장은 "국내 자립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한국 표준형 원전이라는 데 주목한다"며 “우리 기술로 처음 설계해 지은 원전이라 그만큼 심혈을 기울인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한울원전 3호기는 1992년 5월 국내 원전 중에선 처음으로 국내 설계진 책임하에 100만㎾급으로 설계된 한국 표준형 원전이다. 이전까지 국내 원전은 해외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3호기가 순조롭게 착공되면서 우리 기술로 원전 종합설계 시대를 열었다. 다만 3호기와 똑같은 설계로 지어진 4호기는 3호기에 투입된 인력 767명이 함께 관리하지만 무사고 운전 기록을 이어가지 못했다.
한수원 협력사인 한전KPS 신승재(53) 선임과장은 한울원전 3호기의 무고장 신기록에 대해 '최초'라는 데 거듭 의미를 부여했다. 신 과장은 한울원전 3호기의 심장인 원자로를 관리한다. 신 과장은 "같은 방식이지만 4호기보다 1년 정도 앞서 건설된 3호기에 더 많은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3·4호기는 시운전을 3년 정도 했지만, 두 원전만 비교하면 3호기가 더 길었다.
한울원전 3호기는 4,382일간 1억9,491㎿h의 전력을 생산했다. 대구·경북지역 연간 소비 전력량(5,030만㎿h)의 2년 2개월 치다. 3호기가 고장 없이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유연탄 9,011톤, 석유 7,685만 톤, 액화천연가스(LNG) 3,969톤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절감돼,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동시에 달성했다.
직원들의 기록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울원전 3호기는 지난해 말부터 10주기 무고장 운전 달성을 위해 계획예방 정비에 돌입했다. 신 과장은 "동료들이 한울 3호기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속 무사고 기록을 지켜내자는 말을 한다”며 “10주기 발전을 앞두고 점검에 점검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