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초점] '이방원' 까미 사고 1년 후, 달라진 점은

입력
2023.02.06 14:16
지난해 1월 발생한 '태종 이방원' 동물 학대 논란
촬영 현장 내 동물 보호 가이드 향한 관심 증폭
동물보호단체가 지적한 사각지대는?

지난해 2월 한 드라마에서 까미라는 어린 말이 촬영을 위해 강제로 넘어지고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안타까운 사고가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뒤늦게나마 촬영 현장 내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해당 사고 후 1년이 지난 지금, 동물 출연 미디어는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을까.

동물권 행동단체 카라에 따르면 최근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장에서 불거진 동물 학대 사건과 관련해 관계자들이 검찰에 송치됐다. '태종 이방원'의 연출자, 무술감독, 승마팀 담당자, KBS한국방송 등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 연출자, 무술감독, 승마팀 담당자에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힌 동물학대 혐의(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제4호), KBS에는 동물보호법 위반행위에 대해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에게도 해당 조문의 벌금형을 과한다는 혐의(동물보호법 제46조의2)가 적용됐다.

지난해 '태종 이방원' 논란 이후 동물 출연 미디어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크게 일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선두에 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카라 측은 "경주마로 태어나 달리는 도구로만 쓰이던 까미는 이용 가치가 사라지자 소품처럼 촬영에 이용되고 결국 생명마저 잃었다"고 호소했다. 카라와 한국동물보호연합 등은 '태종 이방원'의 제작진을 두고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라며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처럼 대중의 공분이 이어지자 KBS는 드라마를 비롯한 프로그램 제작 전반에서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출연 동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작가이드라인 조항을 새롭게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미디어 속 동물들은 어떻게 보호받고 있을까.

동물권행동 카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말 사망 사고 이후 1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달라진 점을 짚었다. 관계자는 "공영 방송 등은 '태종 이방원'을 계기로 내부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이 불거지고 난 후 이야기된 것이 아쉽지만 준수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OTT 플랫폼은 공중파보다 더욱 파급력이 크지만 내부 기준이 미약하다. 이를 두고 관계자는 "공영방송보다 OTT 채널이 더 사각지대다. 대부분 OTT 방송 프로그램들은 외주를 통해 제작한다. 그러다 보니까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내부 이야기가 있다. 개선하겠다는 것은 했지만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까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촬영장 내 현실적인 동물 보호 대책 마련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카라는 이를 위해 직접 미디어 채널에 동물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캠페인을 펼치며 자료를 수집 중이다. 정부의 지침도 준비 중이다. 카라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을 협의하는 단계에 있다. 다만 속도는 더딘 편이다. '태종 이방원' 논란 이후 오래 지나지 않아 티빙 '장미맨션' 고양이 학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카라 관계자는 "방송에서 충분히 그래픽으로 고양이를 살해하는 장면을 대체할 수 있었으나 실제 고양이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태종 이방원'의 가학적인 동물 소비가 공론화됐고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업계 내에서도 이를 의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카라 역시 해당 사태로 인해 시민들의 관심이 느껴졌다고 밝히면서 "과거 사극들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으나 ('태종 이방원' 논란 이후) 시민들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변화의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바라봤다.

아울러 미디어의 동물 연기자가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카라 관계자는 "동물을 출연시키는 업체의 관리도 사각지대다. 까미도 부상을 입고도 치료를 못 해 방치됐다. 티빙 '장미맨션'에 출연한 고양이도 그 이후에 어떻게 처치됐는지 모니터링이 되지 않았다. 동물을 촬영에 동원하는 산업이 있지만 이 영역에 대한 표준 지침,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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