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반발이 여전하지만, 한일 외교당국은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둘러싼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다. 30일 서울에서 다시 열릴 한일 국장급 협의는 최종 조율의 일환이다.
그간 양측은 배상 방식을 놓고 신경전이 치열했다. 우리 외교부가 12일 공개토론회에서 한국 기업이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먼저 배상하는 제3자 대위변제를 공식화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다시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남은 관건은 최종 합의 발표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에 달렸다. 일본 측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언급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은 일본 정부에서 '누가' 이 같은 입장을 밝힐 것이냐다. 발표자의 '급'을 놓고 우리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담긴 정신을 언급하는 방식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구체적인 '사과' 표명을 할 수 없다면, 총리 차원에서 무게감 있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당시 기시다 외무장관이 아베 신조 총리 명의 사과 입장을 대독했지만 국내에서는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비판이 무성했던 전례가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총리가 구두로 사과의 뜻을 밝히는 건 어림없다는 입장이다. 총리가 전면에 등장할 경우 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이미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방침에 배치된다.
이에 일본 측은 협상 초기 급을 최대한 낮춰 주한일본대사 명의로 입장문을 내는 방안을 우리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측이 난색를 표하자 이후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으로 급을 올려 재차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30일 양국 협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전망이다.
양국 외교가에서는 2월 안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매듭짓고 한일관계 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해법 마련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일본 일정상 △2월 22일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이름)의 날 행사 △3월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 △5·7월 외교청서·방위백서 공개 등 한국 정부와 국민감정을 자극할 악재가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도를 내는 정부에 맞서 피해 당사자와 시민단체들은 '굴욕 외교'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28일 외교부 청사를 항의방문해 "3자 대위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17일 광주지역 60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내일 죽더라도 한국에서 주는 더러운 돈은 받지 않겠다"며 "일본이 무릎 꿇고 사죄하기 전까지는 어떤 돈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