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투자자 A씨는 지난해 가입한 ‘유료 리딩방’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날린 투자액만 절반에 달했다. 낙담도 잠시. 리딩방 운영 업체는 “손해를 만회해 주겠다”며 한 가상화폐 투자를 권했다. 처음 몇 달간 팔 수 없는 조건이 걸렸지만 ‘파격 세일’에 마음이 동한 그는 1,000만 원을 입금했다. 그러나 거래 잠금이 풀리기 직전 시세 그래프가 수직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거래가격은 곧 바닥 수준으로 폭락했다.
가상화폐 투자를 미끼로 한 주식 리딩방 사기가 속출하고 있다. 주식시장 침체로 손실 규모가 급증하자 손해를 일거에 복구하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노린 것이다. 투자 유인 과정에서 시세조작과 개인정보 유출 등 불법행위도 횡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가상화폐 관련 법ㆍ제도가 피해를 키운 주범으로 꼽힌다.
29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금천경찰서는 B코인 발행 재단 대표와 코인 판매업체 소속 직원 등 20명을 사기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앞서 B코인 투자자 97명은 “업체가 투자금 27억5,000만 원을 가로챘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B코인의 사기 전략은 ‘가상화폐 염가 판매’였다. 지난해 4월부터 업체가 운영하는 주식 리딩방 가입자들에게 빠른 손실 회복을 내걸고 해외거래소 상장 코인을 소개했다. ‘한정 판매’ ‘시세(최대 3만8,000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6,000원)’ ‘최소 3배 수익 보장’ 등 눈이 번쩍 뜨일 제안이 투자자들을 사로잡았다.
단 조건이 있었다. 시세 안정을 이유로 매입일로부터 3개월간 ‘락업’을 걸어놨다. 일정 시점까지 계정을 잠가 매도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원금 이하 가격 폭락은 방어하겠다”면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실제 시세 그래프는 꺾일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업체를 신뢰하게 된 투자자들은 기존 주식을 처분하고 대출까지 받아 코인을 대거 사들였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까진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최고 150달러를 찍었던 코인 가격은 지난해 8월 중순이 되자 갑자기 6,000원 아래로 고꾸라졌다. 가장 빠른 락업 해제일이 되기도 전이었다. 한 달이 지나자 재단은 “거래소가 불안정하다”며 급기야 거래 중단을 통보했다. 당시 거래가격은 매입금의 0.013%(78.71원)까지 떨어져 사실상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피해자들은 투자 사기를 목적으로 한 ‘자전거래(내부계좌를 이용해 거래금액ㆍ규모를 부풀리는 행위)’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재단과 판매업체가 조종해 시세를 마구 올린 뒤 수익이 나기 직전 가격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얘기다. B코인에 850만 원을 투자한 이모(38)씨는 “업체에 문의해도 담당자 모친상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만 대며 답변을 피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경찰은 현재 재단 주요 관계자들을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코인 발행 및 유통과정에서 기망행위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식시장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락업코인 투자 피해는 신종 범죄 먹잇감이 되고 있다. 코인 투자 피해자들을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박모(33)씨는 “유사 수법이 의심되는 코인만 60건 정도”라고 했다. 코인 발행ㆍ기획업체가 텔레마케팅 판매책을 모집하는 글도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사기는 또 다른 사기를 낳고 있다. 코인업체들이 투자금 가로채기에 그치지 않고 투자자 개인정보를 거래하거나 대출사기를 일삼은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서에 관련 고소가 접수되기도 했다. 고소장을 제출한 손모(49)씨는 “가입 리딩방과 무관한 업체가 내 주식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투자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가 다양한 사기 통로로 활용되는 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 크다.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는 주식 등 증권과 달리 규제책이 완비되지 않아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은 피해 방지 대책으로 내달 ‘증권형 토큰’ 기준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증권사를 거치지 않는 코인 발행도 허용하기로 해 관리ㆍ감독의 실효성을 담보할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