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배상, 日 기업 '배임'이 걸림돌 ... 게이단렌 '우회 기부' 검토

입력
2023.01.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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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업, 화해협력 기금 기부 형태에는 공감대
'배상금 명목 각출' 일본 국내법선 배임 소지
한일 정부, '유감 표명' 담긴 담화문 검토

한일 양국 최대 현안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의 성패는 일본 기업이 피해자 배상에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달렸다. 외교부가 12일 토론회에서 지탄을 받은 이유는 일본에 대한 구체적 언급없이 우리 기업이 돈을 내 배상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기업이 어떤 식으로든 부담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양국 정부가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배상을 명목으로 기부금을 내면 '배임'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안으로 일본 경제단체연합(게이단렌)이 사회적 책임경영(CSR) 성격의 기부금을 모아 우리 측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전달하는 '우회 기부'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판례 따르면 '배상금' 명목 지출은 배임"

복수의 한일 외교 소식통은 16일 "양국은 재단을 중심으로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일본 기업은 기부금이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에 따른 채무를 인정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판결에 따라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들은 우리 피해자들에게 1억~1억5,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

외교부는 앞서 토론회에서 제3자인 우리 측 재단이 일본 전범기업의 채무를 떠안아 먼저 배상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일본이 나중에 재단 기금 조성에 참여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측은 이마저도 회의적이다. 한일 소식통은 "일본 국내법에 따르면 강제동원 배상 문제는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며 "배상금 명목의 갹출은 배임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데 과반이 동의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일본 '게이단렌'이 완충장치로 끼어들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의 색채를 흐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기업의 기금 부담 명목도 강제동원이 아닌 사회공헌을 의미하는 CSR로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함께 참여하면 양국 재계가 힘을 합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일본 기업→게이단렌→전경련·우리 측 재단→피해자 배상'이라는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일본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일,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형태의 사과 담화 검토

다음은 한일 정부 차원의 조치가 남았다. '담화문' 형식으로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밝히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강제동원이 일본 기업의 가해 차원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배 과정에서 파생된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켜 사실상 '사과'에 준하는 효과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가 먼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고 이를 위한 조정 절차를 거부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자연히 추가적인 '유감' 표명에 회의적이다. 더구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지지율이 역대 최저수준에 그치면서 자민당 내 강경파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다만 기시다 총리도 조속히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는 만큼, 과거 일본 정부가 발표해온 담화를 계승하는 차원의 입장 표명은 가능할 전망이다. 한일관계에 밝은 전직 외교관은 "양국 모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데 긍정적인 입장"이라며 "역대 일본 총리의 담화에서 언급한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관련된 메시지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양국이 묘안을 짜내고는 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해법 제시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못마땅하다. 일본 측의 사과와 책임 있는 배상을 요구하며 당사자들과 성의 있게 협의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일본 측 사과는 피해자에 대한 유감 표시가 아니라 담화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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