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임기 만료를 한 달 앞두고 사실상 물러날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음 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어 또다시 양 단체의 통합 바람이 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허 회장은 최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전경련 부회장들과 식사 모임을 갖고 사의 의사를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 회장은 2011년부터 6회 연속 전경련 회장을 맡아왔고, 다음 달이면 2년 임기가 끝난다.
허 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회장단에 다음 회장 후보를 추천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모임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다음 달 23일 전경련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정기 총회가 예정돼 있지만 허 회장의 뒤를 이을 인물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허 회장은 2017년부터 회장 교체기 때마다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혀왔지만, 후보가 나서지 않아 그동안 회장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허 회장은 이번에는 본격 쇄신이 전경련에 필요하다고 판단, 퇴임을 결정했다는 게 재계 곳곳에서 나오는 의견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추락한 단체의 위상을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끌어올리지 못해 대대적 변화를 바라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경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를 높이고 새 정부를 지원사격하며 경제단체 주축으로 올라서려고 했지만, 다른 단체에 비해 대통령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지난달 윤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가진 비공개 만찬에도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등만 참석했고, 허 회장은 초대받지 못했다. 이후 재계 안팎에서는 허 회장 퇴진설이 나오기도 했다.
재계에선 부회장단 중심으로 다음 회장 선임을 논의하는 관례에 따라 김승연 한화 회장, 이웅열 명예회장, 신동빈 회장 등을 후보군으로 꼽지만, 당사자 모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부회장단이 아닌 외부 인사로 손 회장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손 회장은 CJ그룹 대표이사인 데다, 2005∼2013년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경험도 있다. 경총 회장으론 2018년 취임했다.
손 회장은 평소 전경련과 경총이 통합해 미국의 해리티지재단과 같은 연구단체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혀와 전경련 다음 회장으로 손색없다는 말도 들려온다.
손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올라 양 기관이 실제 통합된다면 2016년 10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 농단 사태 이후 차례로 탈퇴한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이 재가입할 명분도 생긴다. 재계 관계자는 "허 회장이 새 정부 출범 후 나름 열심히 활동해왔지만 다른 단체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한국 경제에 영향력이 큰 4대 그룹이 합류해야 전경련도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