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1700개 면적 잿더미' 고성 산불… "한전 과실 인정 안 돼"

입력
2023.01.11 14:20
항소심서 한전 직원 7명에 무죄 선고
검찰 "한전, 책임 떠넘기기 급급" 주장
법원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입증 안 돼"

2019년 4월 축구장 면적 1,700개가 넘는 산림 1,260㏊를 잿더미로 만든 강원 고성·속초 산불 원인으로 지목된 전신주 관리 소홀 혐의와 관련해 한국전력 직원들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 황승태)는 11일 업무상실화 등 혐의로 기소된 A(61)씨 등 전·현직 한전 직원 7명에게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19년 4월 4일 고성군 원암리에서 시작된 산불과 관련, 전신주 하자를 방치해 끊어진 전선에서 화재가 발생함에 따라 재산과 인명 피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산불로 899억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산림 1,260㏊가 소실됐다. 주민 2명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검찰은 1심에서 한전 측 과실로 인정됐던 '스프링 와셔' 시공 하자를 재차 언급하며 산불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4년 2월 경북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사건 판례를 들어 안전관리 업무와 관련한 명시적 규정이 없더라도 동해안에 강한 '양간지풍'이 부는 점을 고려하면 전선 관리 업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은 "한전은 피해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책임 떠넘기기와 책임을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며 피고인들에게 벌금형 또는 징역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피고인 측 변호인들은 산불 이전부터 문제의 전선이 90도로 꺾여 있었다고 볼 객관적 자료가 없다고 반박했다. 꺾여 있었다 하더라도 전신주 하자로 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반론이다. 또 예상 불가능한 강풍으로 자연재해적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하자로 인해 전선이 끊어져 산불이 발생한 점은 인정했지만,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한전에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며 "내부지침에 없는 주의의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으려면 일반적 관점에서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게 합리적으로 증명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춘천=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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